Lindberg -Believe In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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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나 아니면 길가 리어카에서 흐르는 노래를 듣고 '어, 좋네?'이러고 지나친 경험들이 다들 있을 거다. 그 곡들은 잊을만하면 가끔씩 머릿속에 떠올라 찾아 듣고는 싶지만 아는 정보가 없으니 도무지 찾을 길이 없다. 그저 기억나는 건 보컬이 남자냐 여자냐, 분위기가 어떠냐, 그리고 어설프게 기억나는 '발음나는 대로의' 가사들 이게 다다.

중 1때 아니면 중 2때다. 그러니까 1989년, 90년 이때. 우리 또래에서는 일본문화 붐이 몇몇 사이에서 일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이 때 쯤이 우리나라에서 일본문화에 대한 매니아층이 형성되기 시작한 바로 그 때인데, 내 주위에도 그런 애들이 있었다. 그런데 얘네들의 특징은 지들끼리만 자료를 돌리고 일본문화에 별 관심이 없는 애들한테는 암것도 보여주지도 들려주지도 않는다는 거였다. 나도 그저 복도 지나다 이어폰 뺏어서 잠깐 듣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때는 '논노'라든가 또 기억은 안 나는데 암튼 논노랑 삐까치던 다른 패션잡지 하나도 암암리에 시중에 돌아다니곤 했던 때다. 그리고 신발 사러 시내에 나가거나 하면 리어카에서는 짝퉁 일본 테이프들을 팔기도 하고 그랬다. 아! 그 당시 중구 명동쪽이었던가? 우체국 중에서 가장 큰 본부를 뭐라 하지? 암튼 그곳 주위에 일본 책을 파는 서점들이 많이 있었다.

그때 들었던 노래들이 소년대, 튜브, 히까루겐지, 소녀대, 안전지대 이런 애들이었는데 그 당시의 나에겐 아주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멜로디가 아주 좋았던 기억이다.

하루는 형준이라는 친구가 검은색 스마트 테잎을 주며 들어보라더라. 일본노래였다. 딴건 다 기억 안나고 오직 한 노래가 지난 15년동안 날 괴롭혀왔다. 이제 이 노래 얘기를 해 볼란다.

사실 15년 동안 괴롭혀왔다는 건 좀 구라다. 왜냐하면 내가 그 노래를 찾느라 애쓴 시간은 다 합치면 48시간도 채 못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씩 아주 가끔씩 내 머리속에 떠오를 때면 그 땐 그 노래가 듣고 싶어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 물론 이런 강렬한 욕망도 거의 몇년에 한번 이런 식이었지만...

보컬은 앳된 남자, 가사의 처음이 '비지리삐라', 중간에 '다이죠부'라는 가사가 나온다는 거, 락싸운드에 기반한 흥겨운 멜로디, 이게 내가 가진 정보의 다였고 거기 덧붙여 그 당시 내가 들을 정도의 노래였다면 분명 일본에서도 인기가 많았을 것이라는 추측도 정보라면 정보였다.

이걸 갖고는 도무지 찾을래야 찾을수도 없었고, 또 그 노래말고도 내 주위엔 좋은 노래가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지난 몇년 동안 인터넷 환경이라는 것은 정말 엄청난 발전을 거듭해서 일본문화도 더 이상 소수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되었다. 이제 찾으려고만 하면 찾을 수 있는 시대가 된거다. 그럼 필요한 건 그걸 찾아야 겠다는 열망, 그것도 '지속적인' 열망이었다. 결국 내게 가장 요구되는 건, '어떤' 계기였던 것이다. 라이터 돌을 긁어서 생긴 첫 불꽃말이다.

이 노래를 찾은 지금,, 그 계기는 돌아서 생각해보면 미스터칠드런의 '쿠루미'였다. 쿠루미를 들으면서 그동안 잊고있던 일본음악을 새삼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다가 그만 옛날 생각이 확 난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나의 '비지리삐라'를 찾아야 겠다는 강한 욕망이 생기게 된 것이다.

지식인, 엠파스에 일단 질문을 하는 걸로 시작했다. 네이버에 물어보고 꼬박 하루가 지나 밤 2시 30분쯤 잠자리에 누웠는데 메세지가 왔다. 답변이 들어왔다는 메세지. 잠 확 깨고 봤더니 아,,, 아니었다. 비비퀸즈 라는 그룹의 무슨 노래였는데 이건 내가 찾는 게 아닐 뿐더러 완전 쓰레기였다. 잔뜩 실망을 하고 다음날 -이게 12월 18일쯤의 상황이다- 다시 인터넷을 뒤지는데 일본음악에 대한 질문에 대한 사람들의 답이 대략 하나로 모아지는 것이었다. 하나포스 일음동이라는 곳이었는데 오호~~ 이곳은 자료가 그야말로 만빵이었다. 그런데 가입승인이 너무 늦게 나는 거였다. 이틀이 지나야 나더군...

그곳에서도 글마다 실린 소개 싸이트들을 다 뒤지고, 또 그 싸이트에 링크된 다른 싸이트들 다 가보고, 거기 소개된 싸이트 또 다 뒤지고, 질문게시판에서 답변을 주로 하는 고수스러운 사람들한테는 개인메일도 보내고,,, 암튼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 끝에 결국 다다른 곳은 [http://jpopchart.com.ne.kr/] 라는 싸이트였다.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주간 차트 1위곡을 정리해 좋고 또 들을 수도 있게 해 놓은 아주 소중한 싸이트였다. 그곳에서 내가 어쨌겠냐.
하나 하나 다 들었지. 1960년대는 인간적으로 제꼈고, 1970년대부터 1992년까지 다 들었다.
아,, 그때의 또 우여곡절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리오... 한참 듣고 있는데 재생이 안되길래 봤더니 하루 트래픽 량이 초과했다나 뭐래나,,, 이게 바로 4시간 전의 일이다. 밤 12시가 넘으면 자동으로 풀린다길래 딴 짓 좀 하다가 다시 한곡 한곡 듣기를 계속,,,,,,,,,,,,,,,,

내가 찾는 노래는 없었지만 느낌이 오는 밴드가 있었다. '린드버그'라는 그룹이었는데 링크돼 있던 두 곡이 모두 내가 찾던 그 보컬톤에 그 노래풍이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하나포스 일음동 자료실에 가서 검색해 봤더니 다행히 자료가 있더라... 휴~~ 찾았는데 노래가 없으면 낭패아니냐...

200메가 짜리 그들의 베스트 1, 2를 다운받고 압축을 풀고 하는 과정은 무지하게 두근두근했었다.

드디어 플레이. 베스트 2 부터 플레이 했는데 찾는 노래가 없었다. 하지만 한곡한곡 들을수록 얘들이 맞겠다는 확신은 점점 더 강해졌다.

이제 베스트 1을 쭉 끌어다가 플레이 시키는데 곡 처음 듣고 중간 듣고 넘어가는데 하하,,,, '비지리삐라'가 나왔다. 나왔단 말이다.

전주없이 터지는 '비지리삐라'

난 정말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라 14년전 형준이가 내게 테잎을 건네던 오락실, 그 현장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감동이었다. 기억이 확인될 때의 기쁨, 그리고 내가 찾던 노래가 정말 있구나 하는 좀 바보스런 기분도 들고, 지금 들어도 좋은 이 노래가 그때의 내겐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좀 어린 사람들이 좋아할 풍이다- 암튼 지금 기분이 너무 좋다. 벌써 이 노래를 15번은 들은 거 같다.

내 마음을 이해할 이 어디 있느냐~~

P.S) 알아본 결과
1. 보컬은 앳된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고,
2. 내가 기억하던 스쿨의 줄리앙, 구본승의 미워도 다시 한번 류의 어설픈 락이 아니라 비교적 모양새를 갖춘 락이었으며,
3. 비지리삐라는 곡 제목인 'Believe in love'의 일본식 발음이었다. -_-;;

제대로 된 기억이 없었던 거다.........

그래도 신난다. 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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