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 김창기 -나에게 남겨진 너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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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위 사진의 씨디 사이드 라벨은 거북하다. 김창기는 이 앨범의 녹음을 끝낸 후 아마도 홍보나 영업의 측면에는 일절 관여를 안했나 보다.

이 앨범에 실린 12곡에서 때로는 언뜻언뜻, 때로는 노골적으로 비치는 김창기의 표정은 저렇게 아무 생각없이 즐거워하는 얼굴이 아니다. 현실 속에서 이리저리 아파하면서도 그 상처를 보듬으며 자신의 깊은 속내를 힘겹게 고백하는 이 앨범에선 도대체 저런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단 말이다.

한국 대중 가요 역사에서 가장 자기고백적인 가사 쓰기로 기록될 이 앨범에서 나는 한없는 슬픔과 비탄, 그리고 자기 파괴를 목격한다. 어벙한 표정으로 '시청앞 지하철 역에서'같이 착하디 착한 노래를 부르던 김창기를 이제 잊어야 한다. '날 가지고 논 후에 구겨서 버려도 넌 아름답다'고 말하는 이 끝간데 없는 애절함 앞에서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것은 그런 사랑을 해보고 안해보고를 떠나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부클렛 맨뒤에서 김창기는 '자기들의 얘기를 가사로 쓰는데 허락해 준 환자들-김창기는 정신과 의사다-에게 감사한다'는 말로써 이 가사들의 밑재료가 자기의 경험만이 아님을 밝히고 있지만, 그 사실을 인지한 후에도 이 앨범을 듣다보면 이게 다 김창기 본인의 이야기일 것이라고 단정해버리게 된다.

그렇게 단정해버리는 이유는 나로서도 알기 어려운데, 모르긴 몰라도 이 노래 '나에게 남겨진 너의 의미'가 한몫을 하고 있을 것 같다. 故 김광석에 대한 노래임이 확실한 -따라서 결국 김창기 본인의 이야기임이 확실한- 이 노래에서 그는 '또 나의 삶은 아주 말끔히 포장되고 / 우리의 추억은 멀어지고 / 모두 제 갈 길을 떠나고 / 아침 출근길에 문득 너의 노래를 들으며 / 아주 짧은 순간 호흡이 멈춰질 듯 하지만, 난 단지 날 가끔 내가 원했던 대로 봐 주던 널 잃었다는 것이 안타까웠을 뿐인걸'이라며 떠난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어떤 큰 일이 있어도 세상은, 현실은 그저 또 그렇게 흘러간다는 세상사의 정한 이치를 애써 담담한 척 드러내고 있다.

이 앨범에서는 사실 베스트 트랙을 꼽는다는게 좀 겸연쩍어 진다고 할 정도로 내밀한 부분을 건드리는 노래들이 많은데 그래도 이 귀중한 앨범을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어느 곡을 고를까 하던 중 어제 오늘 갑자기 찬 바람이 부는데 문득 김광석 생각도 나고 해서 이 노래를 소개해보기로 했다.


-이 앨범에서는 우리가 흔히 아는 '싱글'의 성격으로 보자면 6번곡 '이 순간처럼'이라는 곡이 가장 그럴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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