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 꽃다지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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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호의 '너는 내것이라'에 대해 쓰며 CCM과 대중가요 사이의 경계가 희미하다는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다소 급하게 쓰여진 글이어서 부족한 부분을 다시 좀 손보려 했는데 이게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자고로 글은 처음 쓸 때 잘 써야 하는 법이다.

민중가요와 대중가요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민중'과 '대중'의 개념이 판이함에도 결국 민중이 대중이 되고, 대중이 민중이 되고 하는것 아닌가. 특히 근래의 서정성 짙은 민중가요나 발랄 모드 민중가요, 예를 들어 '전화카드 한장'나 '한걸음씩' 같은 곡들은 가사를 꼼꼼히 살펴봐도 특별히 민중가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물론 이 말은 이 노래들이 민중가요로서의 생명력이 덜하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대학 들어가기 직전 97년 1월에 서울 중앙 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다. 사실 병원에서 일한건 아니고 병원 지하에 있는 대형 마트에서 잡일을 한 거였는데 어느날도 점심을 먹으러 1층에 올라가는 중에 사람들이 엄청 모여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중앙 병원 노조가 파업과 관련된 행사를 치르는 거였다. 어, 그런데 곧이어 사회자의 소개를 받으며 이 '꽃다지'가 무대에 오르는 게 아닌가. 밥도 안먹고 한참을 보는데 이제 그만 일하러 가야될 시간 쯤 됐을 때 그들은 이 낯익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고려대에 다닐 때 이런 저런 집회에 얼굴을 비추다보니 자연스레 '꽃다지'라는 존재와 이 곡 '동지' 정도는 알고 있던 상태였다.

어, 그런데 이거 이거, 라이브는 내가 그냥 알던 노래랑은 전혀 딴판이었다. 같은 노랜데 부르는 사람에 따라 전달되는 에너지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꽃다지 입장에서 보자면야 흔하디 흔한 집회판에서 늘상 부르던 노래를 똑같이 불렀던 것일텐데도 난 그때 아직 21살, 세상 어느 것에나 감동 먹을 준비가 항상 끝마쳐진 상태였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꽃다지'의 '동지'라면, 난 지금 들어도 아마 똑같이 감동할 것이다.

노래하는 사람들의 믿음직한 기본 역량에 노련한 화음과 집회판 특유의 신명이 어우러져 이 좋은 노래는 시간 가는줄 모르게 어느덧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하지만 내 온 정신을 집중시킨 것은 '이제 거의 끝이네' 싶었던 부분에서 갑자기 노래의 조성이 바뀌며 앞에서의 우울한 톤이 극적으로 희망적인 세계로 변화하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렇다. 나는 '동지가'의 앞부분만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 그런데 이 조성 바뀌고 나서의 멜로디가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것이었다. 완전히 뿅가서 후덜덜거릴 수 밖에 없었다. 더구나 이게 또 라이브라니. 음악 좋아하는 거에 비해 라이브 공연을 많이 다닌건 아니지만 이 때 '동지'를 들었던 그 경험은 내가 가히 내 인생 최고의 라이브 감상으로 꼽을만한 그런 것이었다. 그때의 그 3분 30여초는 그만큼 내게 압도적이었다.

민중가요쪽에도 노래 자체로서의 미학적인 완성도가 뛰어난 곡들이 수두룩한데 굳이 이 '동지'를 꼽은 것은 나의 이런 개인적인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이다. 민중가요나 CCM을 너무 노래 자체로 바라보는 나의 이런 관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난 예술은 그것이 무엇을 표방하든 또 그것이 어떤 목적에 종사하든지 간에 먼저 '예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이런 조건을 통과하고 난 이후에야 비로소 내용을 논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사실 지독한 탐미주의자가 아닌 다음에야 CCM을 들으면서 예수를, 민중가요를 들으면서 통일이나 노동해방을 영 떠올리지 않기도 힘든 것이다.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서운할 수 있겠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만 말하자면 이렇게 노래 한번 들을때만이라도 그것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역시 의미있는 일이다. '동지 듣고서 감동 먹었어요' 그러는 사람은 쪽팔려서라도 함부로 나쁜짓 못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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