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박종호 -너는 내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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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M이 대중음악인가? '한국대중음악 싱글 200선'에 난 CCM을 집어 넣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 대중음악이라 할 때의 '대중'의 테두리가 어디까지인가 명확치 않기 때문이다. 원래 이 고민은 몇몇 '민중가요'를 소개할 생각을 하면서 떠오른 것이었는데 어떻게 하다보니 CCM이 먼저 나오게 됐다.

CCM은 대중가요가 아니라고 생각하기가 쉬울 것이다. 그리고 그게 맞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CCM이라는 장르가 향하는 방향성이라는 것이 너무 명확하고 또 (당연스레) 그것을 향유하는 집단의 성격 역시 명확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특정 다수라 할 '대중'의 테두리에 넣기가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잠깐 고개를 돌려 이런저런 경우를 생각해보자. 'Stryper'같은 외국 CCM 헤비메탈 그룹의 음악은 사전 지식 없이 들으면 그냥 하나의 좋은 메탈 음악인데 그걸 모르고 듣는 사람을 우린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설령 알고 듣는 사람이라 한들 그 가사를 번역해가면서 그 뜻에 감동하여 즐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 것인가.

또 다른 경우를 생각해보자. 오로지 힙합만 듣는 사람에게 발라드는 대중가요가 아니게 되는가? KAPF의 소설은 대중 소설의 범주에서 벗어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중세에 그려진, 기독교 신앙과 관련된 수많은 그림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것은 크리스챤에게만 향유될 수 있는 것인가? 같은 예로, 그럼 CCM은 비기독교인은 전혀 겨냥하지 않고 만들어지는가? 기독교(인)의 사명 중의 하나가 전세계인의 크리스챤화임을 상기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전무하겠지만, 실제로 그 사명이 완전히 이루어진 경우에야 CCM은 비로소 '대중음악'이 되는 것일까? -내가 지금 CCM의 대중음악적인 요소들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고 있지 않음을 기억하라.

대답이 쉽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럼 적절히 타협하기로 하자. CCM은 대놓고 대중음악이라고 하기 어렵지만, 딱 그만큼 결코 대중음악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것이다. 특히나 해당 CCM 앨범의 제작자가 '크리스챤이 아니면 듣지마'식의 입장을 표방하지 않는 한 CCM은 대중에게 열린 '대중음악'이 맞다. -중요한 얘기가 흘러가듯 나와버렸네.

예술은 어떤 장르이든 '예술적 형상화'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이 일정한 성취를 이루었다면, 그것이 드러내는 주제에 공감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감동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감동이라는 것은 때론 심지어 그 주제와 정반대의 입장을 지닌 사람에게조차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여러 예술 중에서도 방향성을 도드라지게 드러내는 작품들의 기본적인 존재 이유는 그것과 방향을 달리 하는 사람들을 제 편으로 끌어오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예술들중에서 진정한 성취를 이룬 것들은 하나같이 '내부의 단결심 고취'는 물론이거니와 나아가 '새로운 동지의 규합'에 성공한 것들이다.  

나는 크리스챤이 아니고 예수와 천국과 지옥의 존재를 믿지 않지만 이 노래를 들으며 깊은 감동을 느낀다. 난 이 노래가 CCM이기 전에 하나의 좋은 '노래'라고 먼저 인식하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인식이 크리스챤에겐 모순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니가 듣는 건 CCM이 아닌 거야' 그말도 맞다. 나에겐 이게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에서 그저 Contemporary Music으로 축소된(또는 확대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나에게 '가사를 몽땅 들어내도 이 노래를 좋아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결코 그렇지 않다'라고 답할 것 역시 분명하다.

나는 분명코 '너는 내 것이라'라고 말하는 '예수'의 음성에서 감동하는 것이다. 노래도 좋은 건 사실이지만 이 노래에서 느끼는 내 감동의 팔할은 가사에 있는 것이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여도.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 내가 함께 하리라,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 너를 보호하리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여도.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예수를 믿지 않는한 내가 아무리 불구덩이 사이를 향한들 그가 내 곁에 임하지는 않겠지만 그저 저런 가사로 충분하지 않은가. 얼마나 멋진가 말이다. 콕 찍어서 부른대잖아. -내가 이 가사를 특히나 좋아하는 것은, 다른 찬송가나 CCM들이 주로 '신도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이 노래에서는 예수가 직접 말한다는 점이다. 당구 용어를 빌리자면 '싸이즈가 있다'고나 할까.

비크리스챤이 이 노래에 감동하는 모습을 보고 크리스챤들이 고깝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크리스챤이 아니라 해서 이런 노래를 대놓고 멀리 하는 것도 우매한 짓이다.

이런 노래를 앞에 두고 크리스챤/비크리스챤을 논하는 게 참 우습기도 하다. 이 글이 이렇게 장황해 진 데에는 일종의 방어심리 -또는 조심스러움-가 있는 것인데 일전에 아주 깜짝 놀랄만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어느 크리스챤의 '인본주의'에 대한 적개심의 글을 본 것이 그것이었는데 난 그때 망치로 뒷통수를 얻어 맞는 느낌이었다. 내가 전혀 상호 모순 없이 이해하고 있던 것을 그 사람은 인본주의를, '신을 아래로, 인간을 위로' 이런 식으로 이해하고 있는듯 했다. 지금도 그의 이해가 역사적인 문맥을 두루 살핀 시각에 바탕한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지만 어쨌든 입장의 차에 따라 하나의 사건이 그렇게도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나에게 놀라운 경험이었다.

정리하자면 이 코너의 제목이 '내가 좋아하는 한국 음악 200선'이었다면 글이 상당히 간략해졌을 거라는 점. 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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