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에 발표된 조갑경의 2집 수록곡.
조갑경은 한국 대중음악 남녀 듀엣 명곡을 꼽을 때 빼기 힘든 이정석과의 '사랑의 대화' 발표 이후에, 바로 이어 솔로 데뷔 앨범을 내게 되는데 여기서 '바보같은 미소'로 큰 인기를 거두게 된다. '시계'라는, 당대 일본 씨티팝 느낌을 물씬 풍기는 좋은 곡도 담고 있는 괜찮은 앨범이었다.
다음해, 1990년에는 2집을 발표하고 계속 인기를 유지하는데 여기에 바로 훗날 결혼하게 되는 홍서범과의 듀엣곡 '내사랑 투유'가 담겨 있다. 홍서범 특유의 과한 비장미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곡은 아니지만 시대가 원하는 스타일의 곡이었을 뿐, 좋은 곡이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내사랑 투유' 말고도 상큼발랄한 '입맞춤'도 꽤 인기를 얻었던 걸로 기억을 한다.
하지만 이 앨범에 첫번째로 실린 곡은 '저 깊고 푸른 밤에'라는 곡이고 자켓에도 '내사랑 투유'가 아닌 '저 깊고 푸른 밤에'가 새겨져 있음을 볼 수 있다. 당시에는 타이틀 곡 아닌 곡이 타이틀 곡보다 더 큰 히트를 하는 일이 요즘보다 더 잦았던 거 같다. 앨범을 사서 들었더니 그거보다 이게 더 좋은데? 하는 식으로 인기몰이를 하는 것 말이다. 요즘은 제작부터 홍보에 이르기까지 자본이 총집결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상대적으로 덜한 듯 하다.
1990, 91년은 아직 어떤 페이지를 넘기지 못한 시대였다. 한국 대중음악은 꾸준히 발전하고 있었지만 작곡, 편곡, 가창 모든 것들이 80년대의 연장에 머물러 있었던 시기였다. 조동익, 이병우의 '어떤날'이 펼쳐낸 찬란한 업적은 널리 퍼지질 못했고 유재하의 1집 역시 당시 대중들의 품 안으로 넉넉하게 스며들지 못한 채 소수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어내는 정도의 음악이었다. 하지만 유재하 사후, 그의 데뷔 앨범이 큰 인기를 얻었음에도 그 이후 한국형 발라드들이 여전히 80년대에 머물러 있었음은, 무엇보다도 당시 음악 생산자들의 역량과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이다. 좋은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저렇게 만들수 있는지 알 수 없는 그런 음악. 공식에 의존하지 않는, 감성과 재능이 있어야 만들 수 있는 음악. 이영훈, 유재하, 조동익, 이병우 같은 천재들이 80년대 중후반에 거의 동시에 등장하는 것은 그래서 더욱 돌발적인 사건으로 기억이 된다.
그러다가 이제 90년대 중반 즈음이 되어서야 전람회, 이승환 3, 4집, 서태지 등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한 페이지가 시작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게 된다.
조갑경의 이 노래는 지극히 80년대적이고 그런만큼 지금의 귀로 들으면 옛스럽다는 느낌을 어쩔 수 없이 주지만 80년대 감성이 빚어낸 발라드의 최고봉이 아닐까 한다. 신디사이저와 피아노로 시작하는 도입부에 슬픈 목소리로 시작하는 가녀린 보컬. 지극히 전형적인 '그때 그시절' 음악이지만 이 곡이 다른 80년대 발라드들보다 뛰어난 것은 다름 아닌 작곡의 세련됨에 있다. 당시 발라드들이 거의 예외 없이 갖고 있던 '나 좀 있다 빵 터뜨릴 거야'하는 식의 응축, 그래서 음악적 완성도를 깎아 먹던 그것 없이도 좋은 곡은 이렇게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주욱 흘러가면서도 어떤 음악적 긴장을 놓지 않게 하는 곡이 좋은 곡 아닐까. 그러다가 그 긴장은 '(멀리서 들려오는) 기적 소리는' 이 부분에서 어떤 해방을 맞이하는 느낌이다. 90점짜리 곡이 100점이 되는 그 순간. 그 짧은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