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내겐 노래 있어 (부제 :'나는 가수다'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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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나가수'에서 윤도현이 받고 있는 작금의 환호가 어색하게 느껴진다. 대학교 축제 때, 트로트가 흐르거나 또는 트로트 가수가 무대에 오를 때 객석에서 터져 나오는 미칠 듯한 함성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 환호와 함성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들 중 천명의 한 명이라도 가요무대를 즐겨보는 이 있는가, 연말 가요 시상식에서 태진아, 송대관이 나올 때 옆 방송사의 연기대상으로 채널을 돌리지 않는 이 과연 한 명이라도 있는가 라는 질문이 자연스레 떠오르기 때문이다. '난 비주류'라고 우는 소리하는 윤도현의 칭얼거림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잘 보지 못하던 류의 것, 그런데 그것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을 볼 때의 '뿅감'이 사그러들고 난 후, 그곳엔 과연 어떤 풍경이 남게 될까.

2.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가창력 집착증이 있다. '높이 올라가는 것'에 대한 집착... 그러다보니 굴곡이 심한 노래를 선호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중간에 빵 터지는 게 없으면, 좋은 가수 또 좋은 노래로 평가할 가능성을 아예 남겨 놓지 않는다. 이 증상은 예전부터 있어왔지만 근래 들어 점점 심화되고 있다. '가수는 가창력이 기본'이라는 명제가 워낙 튼튼하던 차에 작금의 아이돌 판에 대한 반대급부로 가창력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남은 것은 애꿎은 싱어송라이터의 전멸이다.

3. 나가수가 송북을 한번 꾸며줬으면 좋겠다. 이소라, 김범수의 '제발'을 들으며 문득 들국화의 '제발'을 떠올렸고 자연스레 한국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그룹이라 할 수 있는 이 들국화의 노래로만 출연 가수들이 노래를 부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헌데 들국화의 노래는 일부 가수에게 있어 지난 회의 '정엽'처럼 아무리 잘해도 어떤 넘기 힘든 벽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하지만 '송북'이라는 테마는 꽤나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렇다면?

역시 유재하가 제 격이 아닐까 싶다. 고인의 노래가 가창력을 뽐내는 데 적합한 노래들은 아니지만 나가수 출연진들이 노래만 잘 불러서 지금의 위치에 오른 것은 아닐 것이다. 백지영이 '사랑하기 때문에'를, 윤도현이 '가리워진 길'을, 김범수가 '그대 내품에'를, 이소라가 '우울한 편지'를, 박정현이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부르는 광경은 정말 볼만할 것이다.

4. 어제 박정현의 '첫인상'은 내가 듣기론 그녀의 가장 안좋은 면이 드러난 무대였다. 음과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쥐락펴락하는 것은 그녀만의 초절정 무기이지만 가끔은 그것이 사람을 지치게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런 경우는 예외 없이 그 '쥐락펴락'이 그녀 뜻대로 컨트롤되지 않았을 때이고 말이다. 음을 끌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할 때 그 중간에 어색한 음이 껴들어 간다거나 또는 시작과 끝에서 매듭을 잘 맺어주지 못한다거나 하면 노래 듣기가 불안해진다.

5. 박정현의 '꿈에'는 내맘대로 한국 대중음악 200선에 올라가기로 3년 전부터 내정되어 있었는데 '나가수' 때문에 탈락 위기에 처해 있다.

6. 윤도현을 가리켜 '별로 잘하는 노래가 아니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도 많은데 난 솔직히 그럼 그 사람들은 어떤 락 보컬을 좋아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보기에 윤도현보고 '그다지'라고 하는 사람이라면 현 한국 락 씬에서 목소리는 포기하고 연주만 들어야 한다.

7. 백지영은 역시 좋은 가수였다. 그녀의 '사랑 안 해'를 200선에 올린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울 지경이다.

8. '나가수'는 파행을 겪고 있다. 단 한 순간의 (그러나 여러 사람의) 판단 착오로 일이 이 지경까지 왔다는 게 조금은 무섭기까지 하다. 하지만 스스로 정한 원칙, 관객들과 약속한 원칙을 저버린 것은 명백한 잘못이다. 어떤 식으로든 사과나 문책이 따를 일이라는 점에 나 자신이 깊게 동감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일을 두고 윗선에서 담당 피디를 물러나게 한 것은 납득이 되질 않는다. 처벌의 수위도 맞지 않을 뿐더러 개입 자체가 문제가 된다. 심각하게 공익을 해하지도 않았고 사적인 이득을 챙기지도 않았고 순위 조작 등의 파렴치한 행위를 한 것도 아닌데 위에서 '그만 둬라'라고 할 수 있는가. 학급회의 진행 잘못 했다고 담임이 반장을 막 자르고 그럴 수 있는가 말이다. 게다가 사퇴를 시키고 새로운 피디를 임명하면서 '사회 정의' 운운 했다는데 지나던 개가 사장실에 똥을 싸지를 일이다.

9. 한 달이라는 준비 기간은 지나치게 길다.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살리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면 1회나 길어야 2회 결방 정도로 마무리했어야 하지 않을까. 자칫 맥빠진 프로그램이 되지 않을까 그 점이 염려된다.

10. 좋은 보컬이 가지고 있는 힘, 다름 아닌 노래를 장악하는 능력의 중요함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되는 요즘이다. 남의 노래를 나의 노래로 만들 수 있느냐 없느냐에서 1급과 2급으로 갈리게 된다. 이 좋은 프로그램을 통해 앞으로도 1급들이 더도 덜도 말고 자기의 능력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을 기회를 얻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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