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다른 글을 쓰면서 '이승환은 발전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 내 귀에선 점점 멀어지고 있다'라고 한 적이 있다. 왜일까.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는 그의 음악이 점점 작위적인 그 무엇들을 계속 덧붙이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느낀 것 같다. 나의 음악 듣기의 방향이 점점 간소한 음악 쪽으로 방향을 잡게 되어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의 음악이 시간이 갈수록 말 그대로 모종의 부자연스러움을 동반해서 그리 느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확실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그의 보컬 톤이 나로 하여금 그에게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는 점이다. 그의 보컬은, 적어도 나에겐, 어떤 이질감을 느끼게 한다. 곡에 쉽사리 젖어들게 하지 못한달까.
그러고 보니 그의 드라마틱한 보컬은 자연 드라마틱한 곡에 어울리기 마련이고, 또 당연히 이 드라마틱한 곡이라는 것은 흔히 대곡 지향적이고 또 다층적인 편곡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결국 내가 그의 곡에서 느꼈던 '작위'는 어쩌면 보컬톤에서부터 비롯된 곡의 지나친 비대화(?)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승환의 노래는 다름 아닌 '세가지 소원'인데 이 곡에서 이승환은 초기의 그가 보여주던 예쁜 노랫말과 정결한 멜로디를 3집 이후에선 좀처럼 들을 수 없었던 담백한 목소리로써 들려주고 있다. 결혼을 하려는, 또는 결혼이 아니더라도 그 어떤 굳은 결합을 하고자 하는 두사람이 존재하는 한 아마 이 노래는 영원히 되풀이되어 플레이될 것이다. -이런 곡을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 뮤지션에게 크나큰 영예일 것이다. 브라보.
'세가지 소원'이 담긴 99년 6집 이후의 7, 8, 9집에서도 역시 좋은 노래들을 적지 않게 발견할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고 즐겨 듣는 노래는 작년에 발매된 10집의 바로 이 노래 'reason'이다. 뮤지션이 발전한다는 것은 기품을 쌓아간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니면 적어도 유의어)일 것이다. 지난 시절의 결과물들로부터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매번 조금씩 더 나은 모습을 보이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다음을 더욱 기대하게 하는 것, 이거 정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다. 20년 음악 인생을 거쳐 그의 기품이 어느 정도까지 쌓여왔는지 살펴볼 의향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노래로 확인해봐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