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 무한궤도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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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겨울, 밖에서 놀다 집으로 들어가는 길이었다. 대림역에서 내려 대림2동으로 가려면 건널목을 건너야 했다. 길을 건너면 지금은 큰 길을 따라 중국식 식당들이 즐비하지만 그때엔 통기타 학원이랑 빵집, 그리고 전파상이 있는 약간은 애틋하고 소박한 그런 길로 이어지게 되었다.

길을 건너 좌회전을 하면 집이었는데 건널목 바로 앞에 있는 전파상에서 쇼윈도를 통해 무슨 음악 방송 같은 걸 틀어주고 있었다. MBC 대학가요제였다. 마침 대상 발표를 앞둔 순간이었는데 방청석에서는 시끌벅적한 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아마 자기들이 마음 속에 담아둔 우승 후보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었을텐데 사회자의 발표와 함께 그 소리들이 '와!!!' 하는 함성으로 일제히 바뀐 걸 보면 아마도 그들이 연호한 이름은 '무한궤도'였나 보다.

곧이어 상큼한 형들 여러 명이 얼굴에 정말 기쁘고 벅찬 표정을 드러내며 무대에 올라서는 상을 받고 앵콜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음악이 어땠길래 사람들이 저렇게 미쳤나...

아, 이것은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음악이었다... 인트로의 키보드 소리에서 이미 나는 심박수가 급상승함을 느꼈다. 쨍하고 온 몸이 그리로 가 달라붙는 느낌. 그 꿈틀거리는 음악의 파도 속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그저 쇼윈도에 찰싹 붙어 얼굴을 부빌 뿐이었다.

야, 정말 이런 음악이 다 있구나!

물론 지금의 나는 '그대에게'를 두고 이렇게까지 호들갑을 떨 수는 없다. 그런 음악이라면 다른 나라에서 이미 10년도 더 전에 유행했었음을 이젠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대에게'의 찬란한 빛이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다. 비슷한 류의 음악이 아무리 많아도 이토록 넘치는 에너지와 끝내주는 멜로디를 겸비한 노래를 찾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언제 들어도 나의 심장을 폭발하게 하는 젊음의 찬가, 인트로 3초만으로 자리의 모든 이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유일한 한국 대중 음악인 '그대에게'를 벅차오르는 가슴으로 이 리스트에 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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