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이현석 -after the 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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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어떤 음악을 선호하냐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오로지 클래식파. 이 파들은 클래식 이외의 음악은 음악이라 여기지 않는다. 자기들의 편벽됨을 겉으로 잘 드러내진 않지만 옆에서 살살 긁으면 '가요 나부랭이'에 대한 경멸감을 숨기지 않는다. (이 첫째와 연관해서 한 부류를 더 추가할 수도 있겠다. 바로 '다 듣는데 클래식만 안 듣는 부류' 되시겠다.) 둘째는 가요를 제외한 모든 음악을 듣는 부류다. 영미 팝도 듣고, 월드뮤직도 듣고, 메탈도 듣고 클래식, 재즈까지 다 듣지만 신기하게 가요만 안 듣는다. 보통 '들을 게 없어서'라고 말한다. 셋째는 가요를 포함한 모든 음악을 듣는 부류다. '그딴 게 어딨냐, 좋으면 장땡이다' 마인드로 무장하고 이것 저것 닥치는 대로 듣는 스타일인데 깊이 파는 진득함은 덜해도 셋 중에선 가장 바람직한 음악 듣기 형태가 아닌가 싶다. 

나도 이 세번째 경우에 속하는데 여러 음악들을 듣다보면 우리 대중음악을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즉, 무조건 외면해 버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 것이라 해서 무턱대고 손을 더 들어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좋아서 들을 뿐, 여기에는 다른 그 어떤 선입견도 배제되게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 어떤 곡을 평가할 때 다음과 같은 정도의 쏠림은 있는 것 같다. 가령 외국에 비해 많이 뒤처진 부분에 있어, 어떤 곡이 비록 외국곡의 평균적인 완성도밖에 못 보인다 하더라도 그 곡은 그 정도 해준것만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세계 여러 음악을 듣다가 다시 이 땅으로 와보면 빈곤함, 초라함 같은 것들을 자연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음악은 항상 동시대의 다른 언어권 음악에 비해 격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우뚝 솟은 봉우리가 하나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말 그대로 예외적인 '돌발현상'이었으므로 그걸 가지고 일반적인 평가로 확장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작곡, 작사, 편곡, 악기 톤을 비롯한 녹음 기술 전반 등등 어느 하나 내세울만한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80년대 중반 지나 90년대에 들어서부터는 이런 뒤처짐이 상당히 극복되었고 이것은 사람들이 가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는 것, 즉 가요 음반 판매량이 증가하고 라디오에서는 가요 프로그램이 점차 편성 비중을 높인 것으로 반증된다. 그리고 실제로 이 시기는 우리가 한국 대중음악 명반을 꼽을 때 절대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앨범들을 지천에 깔아놓고 있다. 어떤날을 필두로 들국화, 김현식, 유재하, 이문세(이영훈), 유재하, 김광석, 봄여름가을겨울 등으로 이어지는 파노라마는 암만 생각해봐도 내 일생에 다시 만나기 힘들 것 같은 진풍경이다. 이토록 뛰어난 뮤지션들이 이토록 짧은 기간 안에 몰려 있었다는 것, 아무렴 이건 기적이다.

이 시기를 통해 우리 음악계가 체험한 전방위적인 업그레이드는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 적어도 음악의 외형 (녹음, 연주 등등의 음악을 다듬고 포장하는 기술)을 가꾸는 면에서는 안주나 퇴보 없이 꾸준히 질적인 향상을 보이고 있다.

헌데 유독 우리의 음악계에서 취약한 게 바로 솔로 인스트루멘틀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것이 기타 인스트루멘틀 부분이다. 세션에서는 기가 막힌 연주들을 들려줌에도 불구하고 자기 이름을 걸고 발표하는 독주 앨범에서는 영 마뜩찮은 음악을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사실 기타 연주 앨범 자체가 잘 없다! 워낙 시장이 협소하니 좀체 제작할 용기를 못내는 것이리라. 블루스, 그리고 특히 최근에는 재즈쪽에서 좋은 연주 앨범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반해 (우리나라에서만큼은) 적어도 재즈보다는 오랜 연주 역사를 지니고 있는 락/메탈에서 아직도 이렇다할만한 연주 앨범을 한 장도 보유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재즈는 기존 전통을 잘 따라가기만 해도 기본 점수 이상을 받을 수 있는데 반해 락 쪽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보여주지 않으면 '~~의 재탕' 이라는 비판에 직면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 되리라.

그래서인지 지금 소개하는 이현석의 행보에 더욱 눈이 가기 마련인데 지난 20여 년의 활동 기간 동안 과작이긴 해도 결코 그 끈을 놓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가고 있다는 사실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물론 앨범 전체로 보면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의 몇몇 뛰어난 곡들을 접할 때면 '아, 이제 정말 이쪽에서도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 곡이 나왔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락 솔로 연주 -여기서 락이란 '징징자라'를 뜻하는 게 아니라 非 클래식, 非 재즈의 의미이다- 에서 기본적으로 읊고 지나가줘야 하는 어떤 패턴들이 있다. 뭐랄까, 도입부를 지난 다음 메인 테마를 소개하고, 그것을 발전시키고, 그 후엔 적절하게 애드립을 넣어주고, 다시 테마를 지나 마무리를 하는 어떤 구성적인 측면에서의 패턴말다. 이걸 벗어나 버리면 연주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듣기에 좀 거북스런 곡이 되어버린다. 이현석의 이 어쿠스틱 기타곡, 'after the rain'은 그 패턴을 잘 짚어냈음은 물론 속주 기타리스트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습관적인 손버릇으로 인한 음의 낭비와 과장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아름다운 테마와 멜로디를 잘 뽐낸 탑클래스의 기타 연주곡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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