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chaikovsky -Symphony No.6 "Pathetique" 3악장. Fritz Reiner (Chicago Symphony Orchestra)

|


음악을 듣고 나서의 감상은 제각각 다르기 마련이지만 특별히 4차원에서 뛰노는 사람이 아닌한 어느 정도 큰 틀에서는 비슷하기 마련일 것이다. 가령 핑크 플로이드의 '메들' 앨범을 듣고 나서 "햇빛이 내리쬐는 늦 봄의 따사로운 오후가 생각나요" 이런다든가 제인 버킨의 음성을 듣고 "한 겨울 삭풍이 몰아치는 북녘의 밤이 떠오르네요" 이런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좀 다른 얘기지만 만약 감상의 폭이 만약 개인에 따라 이 정도로 넓고 또 그것이 지극히 자주 보이는 일반적인 현상이라면 소위 말하는 음반 가이드 같은 것들은 죄 성립조차 안될 것이다. 

어쨌든 내가 좋아하는, 아주 좋아하는 이 곡은 "비창"이라는 표제를 달고 있다. 총 4악장 구성인데 1악장, 2악장은 표제가 드러내듯 우울의 끝장을 보여준다. 차이코프스키가 우울증인가를 심하게 앓아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데 그 정신 상태를 반영한 것인양 정말 암울하고 가라앉고 하는 느낌이 전편에 젖어있다. 

그런데 지금 듣는 이 3악장에 와서는 곡의 분위기가 갑자기 바뀌는 것이다. 그러니까 여기서 '바뀐다'고 하는 것은 김민기의 '날개만 있다면'에서 노래가 단조에서 장조로 바뀌면서, '날아가고 싶어'라며 노래하는 어린 반딧불 개똥이의 소원을 극적으로 드러내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아예 다른 곡의 악장이 껴들어간 건 아닌가 싶은 정도의 '바뀜'이다. 

난 솔직히 차이코프스키가 실제보다 100년만 더 옛날 사람이었다면 이건 악보 출판할 때 실수가 껴들어간거 라고 단정짓고 싶을 지경이다. 하지만 차이코프스키는 1893년에 사망했고 또한 죽은 그 해에 발표된 곡이므로 출판 단계에서의 실수를 가정하긴 어렵다. (어설픈 출판, 편집이 껴들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을 것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그가 이 곡을 직접 초연을 했다는 사실은 이런 가정을 거의 확실하게 틀린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그의 지휘로 이루어진 초연을 본 사람 중에 훗날 이 곡의 악보를 접한 사람이 적어도 수 백 명 이상은 될 것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 이 3악장의 호방함과 진취성, 몰아치는 박력은 대체 앞의 1, 2악장 그리고 곧바로 이어지는 4악장과 어떤 관계이며 무엇보다 표제 '비창'과는 어떻게 어울리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까.  

만약 3악장이 1, 2, 4악장과 마찬가지의 분위기였다면? 역사상 최악으로 우울한 곡이 되었을 것임은 뻔하다. 그렇다면 차이코프스키는 이런 극단을 피하기 위해 이 3악장을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을까?

난 모르겠다.

암튼 난 이 3악장에서 존 윌리엄스의 냄새가 나는 것이 여간 마음에 드는 게 아니다. '비창'에서 슈퍼맨이나 인디아나 존스의 테마를 떠올린다는 것은 여간 변칙적(또는 변태적?)인 감상이 아니겠다만 정말이지 이건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서 그런게 아닐 것이다. 

여러분들이 느끼기에 이 곡은 '비창'에 어울리는가?



(용량 문제로 3악장 전체는 담지 못하고 중간 부분부터 끝까지를 올려본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