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 오소영 -soulm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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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상엔 좋은 음반이 참 많이 있다. 이 사실을 몸서리 쳐지게 깨닫고 나면 그 이전과는 좀 다른 사람이 된다.

내가 아는 음악의 지평이 기실 보잘 것 없는 것이었음을, 또한 음악의 바다는 무한정한 갯수만큼의 지평선을 포함하고 있음을, 그리고 그 바다엔 오늘 이 시간에도 쉴 새 없이 새로운 물줄기들이 물길을 대고 있음을 알게 되면 사람은 그저 겸손해질 뿐이다. 

헌데 이 겸손해지는 과정엔 필시 부끄러움과 당혹감, 또 미지의 세계가 내 앞에 영원히 펼쳐질 것에 대한 일말의 두려움 (또 그와 동반되는 보물찾기하는 어린이의 들뜸), 혼자만 알고 싶은 소유욕과 널리 알리고픈 욕망의 길항 같은 것들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그래서 이제 '음악 듣기'는 그냥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닌, 한 개인의 내면과 가치관 같은 부분을 건드리고 또 형성해 나가게 하는 그 무엇이 된다. 이런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 무척이나 독특하면서도 소중한 경험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테고 말이다. 

2. 세상엔 좋은 음반이 참 많이 있다. 그런데 좋은 음반이라고 해서 내가 그들 모두를 껴안고 평생을 가는 것은 아니다. 특별한 감정의 상태, 특별한 환경에서만 꺼내 듣게 되는 음반도 있고, 좋은 음반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지만 내 맘엔 들지 않아 멀리 하는 음반도 있고, 또 좋긴 한데 듣기에 부담이 되는 음반도 있고, 끝내주는 곡을 담고 있는데 앨범 전체로는 그렇지 못해 잘 안찾게 되는 앨범도 있고 그렇다. 

그래서 평생지기라고 부를만한 앨범이라면 100장짜리 씨디랙 하나로 정리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생각은 앞으로 바뀔 수도 있다.)
 
3. 평생 곁에 둘 음반을 만나는 것은 그래서 기적과도 같은 것인데 그 기적이 바로 어제 일어났다. 따뜻함과 솔직함, 그러면서도 감상에 빠지지 않는 절제가 품위있는 작곡과 만나 마음 깊은 곳을 흔드는 오소영의 2집은 2009년의 한국대중음악을 되짚어 볼 때 아마도 이장혁 2집과 함께 가장 뛰어난 성취로 기록될 것이다. 비록 1단 기사의 타이틀은 '걸그룹의 전성시대'가 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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