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 200선에서 이 노래를 소개하면서
'응원가라고 해서 꼭 경기 중에만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닐테고 또 신나는 분위기의 곡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승부에서 지고 온 이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는 응원가를 불러주고 싶을때, 그리고 꼭 운동선수가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그동안의 힘든 여정을 마치고 우리 곁에 돌아오는 자리에서 그의 수고로움을 보듬는 노래가 필요할 때, '언제나 우리, 그대 곁에 있다'는 모두를 감동시킬 수 있는 노래가 되기에 충분할 것이다.'
와 같이 쓴 바가 있다.
지금에 와 고백하는 것이지만 저 문단은 노무현을 떠올리며 쓴 것이었다. 당시 노무현은 만신창이었고 또 그렇게 된 것이 전혀 터무니 없는 것만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 이성적 판단과는 다르게 그를 향한 내 지지를 철회할 수는 없었다.
어디 그 이유가 하나둘 이었겠는가...
그가 '5년 뒤에도 웃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난 진심으로 그 말이 실현되길 기원했고, 또 비록 5년 뒤는 아니더라도 이르면 10년 뒤엔 분명히 그런 시기가 오리라 생각했다.
퇴임 후 그가 귀향할 때 마을 어귀에서 작은 밴드의 일원이 되어 이 노래를 불러줌으로써 그의 지친 영혼을 위로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끄러운 상상도 했음을 이제 와 새삼 밝힌다.
그의 죽음 앞에 내 아무 것도 할 것이 없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이제 이 노래를 바칠 기회가 영영 사라질 것 같다.
저 사진의 앙다문 입술이 사무치게 그립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저 세상에선 부디 편히 쉬세요."
나의 친구여 우리 길 비록 험한 벽에 부딪혀도
최선을 다한 멋진 그대 사랑한다 사랑해
나의 친구여 그대로 인해 우리 참 행복했다.
언제나 그대 곁에 우리 함께 뛰고 있으니
지친 영혼 끌어 안고 허공 가르는 공처럼
내일의 태양이 우릴 비추는 그날까지 끝까지
언제나 그대 곁에 우리 영원히 함께 있다.
영원히 함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