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리나요'에 관한 몇가지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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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새 태연의 '들리나요'에 푹 빠져 있다. 관련 동영상을 뒤져 찾아 보고 또 따라 부르기도 하고 그러는데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들리나요'를 부르는 태연에게 빠져 있는 것이고 좀 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태연에게 빠져 있다고 해야겠다.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이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흐를 때 난 아무런 인상도 받지 못했었다.  


2. 좋은 음악과 별 볼일 없는 음악은, 물론 힘들지만, 어느 정도 '언어'의 틀을 빌려 설명할 수 있다. 가령 '시대를 열었다'거나 '개성적인 멜로디를 지녔다'거나 또는 '뛰어난 화성 구조를 보인다'거나 하는 것들 말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음악과 싫어하는 음악의 분별에 대한 설명은 이보다 훨씬 더 어렵고 또 기껏 설명한들 남들의 동의를 얻어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누군가 당신에게 '넌 그 음악이 왜 좋니?'라고 물을 때 당신이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답은 과연 무엇이겠는가.


3. 그래서 개인적인 선호의 차원으로 국한하자면 핑크 플로이드 컬렉터나 동방신기 컬렉터나 눈곱만큼의 차이도 없는 것이다. 그들은 그 음악이 훌륭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좋으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4. 언론에서 큰따옴표를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것은 이미 오래된 일이다. 발화자의 말 그대로를 일체의 가감없이 담아야 하는 이 큰따옴표 안에 아주 종종 기자 임의의 윤문, 첨삭과 잘라붙이기의 변형을 거친 문장이 들어가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명백한 사기다.

오늘자 (2008.12.26) 일간스포츠 인터넷 기사에는 김연아가 자기 노래를 부른 것에 대한 태연의 평을 담은 글이 실렸는데 거기엔 큰따옴표를 이용해 태연의 말을 인용한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었다.

"김연아가 부른 내 노래 '들리나요'와 '만약에' 모두 애절한 발라드인데, 김연아는 노래 분위기와 감성을 자기 나름으로 체화해 전달하는 특별함이 있다."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더구나 19살 먹은 사람이라면 더욱 더, 대화 중에 '체화'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다. 이 단어를 모를 가능성이 클 뿐더러 만약 안다고 해도 이 단어를 알 정도의 사람이라면 이게 학적인 저술이나 발화가 아닌 실제 대화 속에 쓰이기엔 결코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동시에 알기 때문이다. 

난 저 문장이 기자의 싸구려 윤문질에 의한 것이라는 데에 내 전 재산과 손모가지를...


5. 김연아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것은 그녀가 스케이트를 잘 타서 만이 아니다. 그녀는 시대도 잘 타고 난 것이다. 과거 70년대에는 그같은 캐릭터가 없었겠는가? 기자들과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이를 환히 드러내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는 그런 캐릭터 말이다. 있었을 것이다. 다만 시대로부터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다. 조국의 품에 '금'을 안기고 대한민국의 국위 선양을 위해 운동을 하던 시대, 그 시대에 정작 선수 개인은 사라지고 없었다.  
  

6. 그나저나 얘네 어쩔...



-태연 영상보다 소리가 크다. 조심해서 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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