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 박지윤 -환상

|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만약 박지윤이 한국 가요사에 이름을 한자락 남기게 된다면 그것은 이 한 곡, '환상' 덕택일 것이다. 박진영이 작곡한 노래인데 난 암만 생각해도 박진영의 재능이, 그가 즐겨 하는 펑키한 스타일에 있는 게 아니라 이 노래처럼 선율 좋은 발라드에 있는게 아닌가 싶다. 그의 솔로 앨범에 있는 '너의 뒤에서' 같은 곡들말이다.

이 노래 좀 묘하다. 메인 스트림적인 느낌이 강하면서도 뭔가 색다른 구석이 있다. 우선 이런 느낌을 풍기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박지윤의 가성일 것이다. 이렇게 대놓고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성으로 부른 예가 다른 가수들에선 없는 것이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노래의 독특함은 인정될 만하다. 그런데 사실 이게 '독특한' 가성인지 아닌지는 명확하지 않은데, 그 누가 부르든 가성으로 부르면 이런 맛을 어렵지 않게 낼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나의 이런 지적에는, 박지윤이 이 노래의 분위기를 위해 전략적으로 이런 창법을 썼느냐 아니면 가창력의 한계 때문에 그리 했느냐의 질문 사이에서 아무래도 후자의 손을 들어줘야 할 것으로 생각되는 바, 어느 정도 마뜩찮게 생각하는 면이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박진영은 박지윤의 이런 보컬을 고려해서 작곡을 했을 터이고, 또 박지윤도 자기가 할 수 있는만큼의 능력 안에서 곡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것 역시 사실이다.

이 노래가 독특하게 느껴지는 다른 이유는 후렴구 중의 '그대 떠난걸, 헤어졌다는 걸, 혼자라는 걸, 난 믿을수가 없는 걸' 이 부분의 각운에 있다. 요새 힙합의 강세에 힘입어 우리 음악의 가사중에서도 저런 식의 각운이 쓰이는 게 참 많은데 발라드에서 이렇게 잘 쓰인 예를 찾기도 쉽지 않은 거 같다. 네 토막으로 나뉘는 부분부분이 서로 연결되며 점차 고조되는 느낌으로 잘 표현되고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둘만 하다.

좀 다른 이야기를 하자. 난 이 노래를 정훈희가 불렀으면 어떨까 하고 생각해봤다. 좋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정훈희가 불러서 어색하게 느껴지는 게 있다면 바로 저 부분을 노래할 때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훈희의 고운 발성으로 또박또박 노래하면 왠지 맛이 확 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얘기다.

뭔가 어설픈 듯 하면서도 독특한 맛이 있고, 메인 스트림적이면서도 거기서 한발짝 떨어져 자기만의 향취를 발하는 박지윤의 '환상'을 179번째 곡으로 한다.


-박진영이 부른 '너의 뒤에서'는 김형석이 작곡했다. 잘못 알았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