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찬 -무지개 (부제 : 이언 매큐언의 '첫사랑, 마지막 의식')

|




이번 주 시사IN에 작가 소개와 이 책에 대한 서평이 두 페이지에 걸쳐 실렸다.

잘 나가던 글은 마지막 네 줄로 인해 비로소 완벽해졌다.

"사족 하나. 이 책의 원제는 'first love, last rites'다. 대구(對句)를 살리려면 '첫 번째 사랑, 마지막 의식'으로 옮기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백 번 옳은 지적이다. 제목을 이렇게 옮긴 책이라면 속이야 안봐도 뻔할 것이다. 그래서 난 장바구니에서 이 책을 비웠다.


-원래 여기까지만 쓰고 끝낸 글이었는데 좀 더 생각할 게 있는 거 같다. 번역자가 설마 저렇게 대구를 살려 번역하는 게 더 낫다는 걸 몰랐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잘한다는 게 꼭 한국어를 잘한다는 걸 뜻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first love'를 관습적으로 '첫사랑'으로 번역해 버리고 마는 수준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번역자의 동의 없이 또는 암묵적인 동의 하에 출판사 측에서 제목을 정한 게 될테다. 그렇게 한 이유는? '첫사랑' 그러면 뭔가 좀 있어보이니까 그러했을 것이다. 게다가 작금의 출판 시장에서 가장 구매력있는 집단이 2, 30대 여성이라는 얘기도 자주 들리는 걸 보면 '첫번째 사랑'을 '첫사랑'으로 바꾸고 싶은 유혹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유혹은 유혹에서 그쳤어야 했다. '첫번째 사랑'과 '첫사랑'은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첫번째 사랑이나 첫사랑이나 다 같은 거 아니냐고 따지면 이제 좀 피곤해지기 시작하는 거다. 말의 결은 섬세하고 여린 것이어서 조그만 변화에도 쉽게 상처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첫사랑'이라는 말 속에는 청춘의 수줍음이, 발갛게 달뜬 얼굴이, 해질 무렵의 머뭇거림이,  그리고 이루어지 않으리라는 불길한 예측이 뒤죽박죽 섞여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짧은 단어는 이제 폭발 직전의 화산 과도 같은 뜨거운 단어가 되고 만다. 허나 '첫번째 사랑'에는 아무런 기억도 가치도, 정서도 담겨 있지 않다. 이건 그저 '첫번째' 하는 사랑일 뿐이다. 

결국 이 둘은 독립적인 단어이다.  

그래서 난 '첫번째 사랑'을 '첫사랑'으로 바꾼 그 무모함이 일말의 타당성이라도 지니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이 책을 장바구니에 담게 되었다




-글을 쓴 게 2008년 3월이었다. 따라서 첫 문장의 '이번 주 시사IN'은 2008년 11월을 가리키는 게 아니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