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 Pudding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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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앨범을 구입한 건 순전히 두번째 곡, '안녕'때문이었다. 김창완 원곡을 도저히 씨디로는 구할 수가 없어서 얘들이 어떤 그룹인지도 어떤 음악을 하는지도 또 '안녕'을 어떻게 편곡했는지도 전혀 모른채 리메이크 버전이라도 곁에 둬 보자는 마음에 일단 사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안녕'은 그리 주목할 만한 곡이 아니었다.

실망감에서 비롯된 시큰둥한 마음으로 감상해서인지는 몰라도 이 앨범을 처음 얼핏 듣을 때의 느낌은 '너무 틀에 짜여져 있다'는 것이었다. 연주력이나 멤버 간의 호흡, 기본적인 작편곡 능력 같은 것들은 나무랄 데 없었지만 음악은, 좋은 음악은 그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이들에게는 자유로운 상상력과 기존의 문법을 뛰어넘는 창의력이 부족해 보였다.

다소 뻔한 보사노바와 라운지, 뉴에이지가 혼재되어 있는 이 앨범을 나는 그냥 한 번 듣고 지나쳐도 무방한 그런 앨범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기가 막힌 스네어 소리를 들려줬던 4, 5번 트랙은 안타깝게도 이들의 창작곡이 아니라 아베마리아를 편곡한 것이었고 말이다.

그렇게 심드렁하게 듣고 있는데 어느 트랙에선가 불이 탁하고 켜지는 느낌이 갑자기 들었다. 9번 곡 'Christmas Eve, 1999'였다. 좀 과장해서 얘기하면 같은 애들인가 싶을 정도였다. 그러니까 이건 좀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다. 앞의 곡들과 비교해서 곡에 대한 접근법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닌데 이 노래는 다르게 들렸던 것이다. 앞 트랙에서 공히 부족했던 자유로움, 신선함 같은 것들이 9번 곡에서는 갑자기 충만해져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이 정점에 달한 것이 바로 지금 소개하려는 'nowhere'였고 말이다.

이 곡은 80년대의 감성이 90년대의 테크닉을 만나 2000년대의 얼굴을 하고서 빛을 발하는 곡이다.

그렇다. 난 이곡에서 '어떤날'과 윤상의 얼굴을 떠올렸던 것이다.

이들이 이 곡을 다듬으면서 저 사람들을 염두에 두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엔 분명 이병우의 어떤날 활동 당시 작풍과 조동익 프렛리스 베이스 연주의 전형적인 모습들이 진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리고 이 둘의 세계는 다시 윤상의 프로그래밍에 의해 한층 더 견고해지고 있고 말이다.

X-File 식으로 말하자면 난 이 곡이 어쩌면 '어떤날'과 윤상의 비밀스런 프로젝트일지도 모른다고까지 생각했던 것이다. 쓸 데 없는 상상이 여기서 그치지 않고 '어떤날'이 계속 음악을 했다면 이런 음악을 들려줬겠구나' 하는 데까지 미치다보니 잠깐 동안이나마 나의 마음은 울컥해졌다.

다시 만나기 힘든 두 거장(이병우/조동익)을 한 데 모아 그들의 음악을 발전적이고 현재적인 모습으로 창조해 낸 그들의 곡 'nowhere'는 그렇게 해서 내게 쉽게 잊혀지지 않을 곡이 되었다. 물론 이런 식의 감상은 나에게만 (또는 어떤날을 아는 사람 중에 내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에게만) 유효한 것이다. 따라서 여기서 멈춰선다면 당연히 명곡이라는 칭호를 붙여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곡의 정말 뛰어난 점은, 그리고 이 곡이 명곡인 것은, 이 곡이 '어떤날'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내가 받았던 것과 비슷한 정도의 음악적 감동을 주리라는 데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곡은 이미 '보편적'이다.

명반이라고는 감히 말할 수 없지만 명곡을 탄생시킨 소중한 앨범으로 기억하게 될 것 같다.

 -2005년에 나온 2집과 이 앨범 모두 아직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아, 그리고 '안녕'은 산울림의 세 장짜리 베스트 앨범에 들어 있다. 집에 있었는데 몰랐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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