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 우리동네 사람들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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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오전에 중고 음반 싸이트 '라뮤지카'에서 주문을 한 건 했다. '우리노래 전시회'라는 유명한 컴필레이션 시리즈의 4집이 민트급 LP로 나와있길래 그거 하나 주문하고, 또 '빛과 소금' 3집이 없는 거 같아서 그것도 넣고(막상 집에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경우가 점점 자주 생긴다.),,, 줄리아 하트 1집 씨디가 좀 싸길래 그것도 껴넣고 해서 한 4만원 썼나 보다.

 점심 먹고 나서 배송이 혹시 진행됐나 하고 싸이트 뒤적이는데 아닛, 오늘 소개할 이 '우리동네 사람들'의 미개봉 테잎이 눈에 띄는게 아닌가! 아까는 분명히 검색에 안 걸렸었는데 말이다!!!

씨디가 아니라 좀 아쉬웠지만 이게 어딘가 싶어서 주문을 하려는데 에구, 이렇게 하면 개별 주문이 되어 배송료 2500원을 또 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직접 입금을 할 생각으로 가게에 전화를 했더니 아저씨가 나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손영주씨요? 그 진도에 계시던 분 아네요?'

 '아, 근무가 끝나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아, 그러시군요.'

 '이걸 결제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문을 따로 하면 배송비가 붙어서요. 통장 번호를 좀 알려주시죠. 그럼 제가 테잎값을 입금하고, 사장님은 오전에 한 주문 포장할 때 테잎만 껴넣어 주시면 되죠'

아니, 이렇게 합리적으로 얘길 했는데도 뭘 자꾸 머뭇머뭇하는 게 아닌가. 왜 그러나 싶어서 나도 그냥 가만 있는데 아저씨가 이러는 거였다.

 '아네요, 단골인데 그냥 보내드릴게요'

헐~ 거기는 이제까지 스무건도 안되게 주문한, 나로서는 마이너하게 들르는 싸이트였는데 나를 단골로 생각해주고 거기다 테잎마저 공짜로 보내준다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오늘 온 테잎을 뜯어 보니 매장에 오래 놔뒀는지 구석이 노랗게 바래 있는데 그래도 살짝 플레이를 해보니 이상은 없는 거 같다. 라뮤지카 사장님 땡쓰~!

지난 3월 윤도현의 러브레터 5주년 특집이었나에 이들 우리동네 사람들이 나왔다.

난 그동안 이들의 이름을 김광석을 통해서만 기억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앨범에 이들의 '말하지 못한 내사랑'이 실려 있고 또 그의 4집에는 마찬가지로 이들의 원곡인 '서른 즈음에'가 실려 있기 때문에 그 앨범들의 리뷰를 접할 때만 '우리동네 사람들'이라는 존재를 간간이 떠올릴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 말은, 이들의 곡을 가져다 쓴 김광석의 노래는 명곡으로 칭찬이 자자한데도 원곡을 제공한 '우리동네 사람들'에 대해서는 평단의 주목이 훨씬 덜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냥 아예 '없었다'라고 써도 될 거 같다.)

잊을만하면 김광석 앨범 리뷰를 보면서 다시 기억해 내고, 또 잊을만 하면 다시 기억해 내고 그러기를 수년째 해오고 있었는데 아니 이 사람들이 티비에 다 나올 줄이야?

처음엔 얘네들이 누군지도 몰랐다. 중년의 남녀 넷이 나와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넷중에 한명이 동물원 자켓에서 봤던 유준열이라는 것 빼면 내가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이건 무슨 조합이지? 혹시 듣보잡? 요새 러브레터 맛이 갔다더니 정말이구나...

헐~ 그런데 보사노바 풍의 기타 반주 위로 엄청 무기력한 목소리의 아저씨가 노래를 불러 제끼는데 이거 의외로 대박이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 난 이미 티비 앞으로 슬금슬금 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또 어디 있다가 기어나온 것일까. 

아니, 그런데 알고 보니 얘네들이 바로 '우리 동네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말로만 알던 음악, 간절히 찾아 오던 음악을 처음 듣고 나서 '이야~ 역시 좋구나'하고 흐뭇해하는 것은 매니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기도 하다.

그저 '산뜻하다'고만 말하고 지나가기엔 이들의 스펙트럼은 훨씬 더 넓은 거 같다. 맨하탄 트랜스퍼 풍으로 가다가도 덜컥 '서른 즈음에' 같은 곡이 걸리기 때문이다. 멋진 작곡과 세션진의 연주도 좋고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깊은 내공과 애정이 잔뜩 묻어 있는 이 앨범이라면 가히 '90년대의 명반' 중 하나로 꼽기에 부족함이 없을 거 같다.

재발매 추진하자!

 



 -참고로 이 곡 '미안해'는 'FM 음악도시 이소라입니다'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도 실려 있다. 구하기 어렵긴 매한가지이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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