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모리슨 호텔 -so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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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크리스마스에 할 일도 없고 해서 신촌엘 나갔다. 연대 앞에 있는 향뮤직에서 미리 주문했던 씨디를 받고, 뭐 더 살 게 있나 매장을 돌고 있는데 스피커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흘러 나오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봐서는 윤도현이 신보를 낸 듯 했는데 이전과는 달리 사운드가 많이 간소해진 느낌과 함께 기타 연주의 빼어남이 귀에 먼저 느껴졌다. 윤도현이 컨셉을 잘 잡았구나 하는 마음으로 "윤도현 신보 냈어요?" 했더니 아가씨가 "이거 윤도현 아네요. 목소리 비슷하죠!" 하면서 내민 앨범이 바로 이 '모리슨 호텔'이었다. 한 두 곡 들은 게 다지만 이미 삘은 강하게 왔고, 해서 아무 주저없이 계산대 위에 올려 놓았다. 자고로 음반 매장에도 가끔씩 가줘야 이런 횡재를 하는 법이다. 올 해 12월 14일에 발매가 된 앨범이니 내가 이 200선에서 소개하는 음악 중에 동시대성을 가장 강하게 띄는 곡이 될 것 같다. 

최근의 한국 가요계는 정말 군웅할거의 시대를 맞은 듯 하다. 성과물의 질로만 따지면 80년대 중반의 그것과 필적하고 성과물의 양은 그때를 능가한다.

하지만 이글을 읽는 사람들도 알다시피 '군웅할거'라는 표현에는 어색함이 있다. 그 '영웅'들은 여전히 터무니없는 음반 판매고를 보이고 있고,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은 '당최 들을 게 없다'라고 얘기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런 현실을 애써 무시하고 글을 더 적어보자면 현재 가요계의 가장 큰 동력은 싱어송라이터와 재즈계열의 약진에 있는 것 같다. 반면 메인스트림 중에서도 주류라 할만한 한국형 어덜트 컨템퍼러리와 알앤비 및 댄스는 이미 음악적으로 정점에 다다른 듯 하고 더 이상 귀기울일만한 성과물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황성제가 작업한 박정현 6집이 최근 발매되었는데 이 앨범 정도가 근 몇개월 간에 그쪽 계열에서는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유일한 앨범이다.

싱어송라이터. 노래를 만들고 직접 부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나. 그렇다, 밴드가 아니라는 점을 덧붙여야 겠다.

이 모리슨 호텔이라는 그룹은 사실 그룹이 아닌 '남수한'이라는 사람의 솔로 프로젝트이다. 그가 전곡의 작사 작곡 및 기타 연주와 드럼 프로그래밍을 도맡아 했고 몇몇 곡에서는 직접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다만 윤도현으로 착각하게 했던 그 목소리는 그의 것이 아니라 이 앨범의 많은 곡에서 객원 보컬을 맡은 '김찬'이라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요새 토이의 새 앨범에서 '뜨거운 안녕'을 불러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지형'을 알려나 모르겠다. 작년(재작년?) 그의 솔로 데뷔 앨범이 나왔을 때 평단에서도 큰 호평을 보낸 바 있는데 모리슨 호텔의 이 앨범도 그 정도의 평가는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둘을 비교하자면 이지형 보다는 좀 더 스트레이트한 맛이 강하고, 남수한 본인이 기타리스트 출신이다보니 기타 소리를 잡는데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사실 이 앨범에서의 기타는 톤이나 연주, 아이디어의 측면에서 근래 대중가요 중에서 가장 빼어나다고 할만한 것이다. 화려하고 어려운 연주는 아니지만 적재적소에서 좋은 소리를 들려주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을 것이다.

앨범에 실린 곡들이 모두 수준 이상이고, 또 어렵지도 않다. 대중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기에 적합한, 메인스트림 취향의 곡들도 여럿 있다. 이 앨범이, 이 뮤지션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지는 이제 듣는 이들에게 달린 일이다.  

다만 드럼을 실연으로 하지 않고 프로그래밍으로 찍어낸 점은 두고두고 아쉬운 점이고, 또 윤도현과 너무 비슷한 김찬의 보컬은 이 앨범의 오리지널리티를 깎아 내리는 데 흠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2집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이 된다.

첫번째 곡인 'come to me'나 두번째 곡 '사랑하는 길'과 같은 곡들도 좋고, 남수한 본인이 직접 부른 '마주 잡은 손 사이로 땀방울' 같은 곡도 훌륭한데 나는 나를 가장 몰입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so sorry'를 소개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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