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 두번째달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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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쑈크다. 우리나라에서 나올 수 없는 음반이 나왔다.

 

이건 내가 들국화를 가리켜 '당시 씬에서 나올 수 없는 음악을 했다'고 얘기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다. 들국화의 경우는 당시의 수준을 훌쩍 뛰어 넘은 음악이라는 뜻인 반면 이들 '두번째 달'에 바치는 이 말은 말 그대로 영영 이땅에서는 재현할 수 없을 것 같은 음악을 만들어냈다는 뜻이다.

이들은 흔한 말로 '월드뮤직'을 하는 팀이다. 1세계, 2세계 외의 나라들의 토속 음악을 자양분으로 해서 작업을 한다는 말이며 이것은 동시에 접근 방식이 출발부터 다른 음악을 건드린다는 얘기다. 어설프게 하면 도저히 못 들어줄 음악이 되기 십상인 것이다.

아, 그런데 이 앨범 정말 잘 만들어졌다. 월드뮤직 중에서 어느 한 지역권만의 음악을 판 것도 아니고 여기 저기 많이 헤짚고 다닌 느낌인데도 한 곡 한 곡이 어설픈 게 전혀 없다.

난 정말 어떻게 이렇게 했나 싶다.

연주도 좋고, 곡도 좋고, 또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바로 '녹음'이 잘된 점이다. 요새는 홈레코딩으로 작업하는 인디 뮤지션들의 음반 중에도 정말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잘 빠진 것들이 있는데 이 '두번째 달'은 인디 뮤지션이라고 보기엔 힘들지만 아무튼 녹음을 참 잘 했다. 많은 악기가 쓰인 음반인데 각각의 소리가 명징하고 또 그러면서도 잘 섞여 있다.

놀라운 곡들이 17곡 씩이나 빼곡이 담겨 있다. 너무 많은 곡이 담겨 있다는 점이 외려 흠이 될 정도이다. -아무리 뛰어난 곡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해도 한 음반을 듣는데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된다면 이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인간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 앨범의 흠을 억지로 찾아낸 것이라는 말을 분명히 해둔다.  

두세번 더 꼼꼼히 들어봐야 하겠지만 이들의 음악에서 내가 '한국적'인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나나 이들이나 곱씹어 볼만한 일일 것 같다. 한국인들이 만든 음반은 그것이 그 어떤 주제와 목표 의식을 가지고 만들었든지 간에 '한국적'인 그 무엇을 자연스레 (또는 어쩔 수 없이) 담고 있기 마련이다. 오해는 말자. 난 지금 5음계나 중중모리, 자진모리 같은 어떤 국악적인 요소를 말하는 게 아니다. 멜로디나 리듬 같은 데서 언뜻 언뜻 비치게 마련이 한국 음악 특유의 어떤 정서적인 느낌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엔 그게 없다.

월드뮤직을 하고자 하는 한국 뮤지션에게 이것은 득일까, 독일까.

이런 고민을 잠깐 해보며 앨범에 첫 곡으로 실려 상쾌한 스타트를 끊어주는 '여행의 시작'을 목록에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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