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 못(MOT) -카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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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2집이 나왔다. 이 앨범은 1집이다. 두 앨범 다 아직 깊이 듣지 못했다. (아니지, 2집은 산 지 세 달은 된 거 같은데 아직 포장도 뜯지 않았다) 1집을 제대로 안 들었는데 2집은 무슨 깡으로 샀나? 인상이 좋았다. 얼핏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쭉 들은게 한 번인가 밖에 안되니 '좋았다'라고 단정적으로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 '인상이 좋았다.'

그 '인상'은 샘플을 전혀 들어보지 않아도 후속작을 구입하게끔 할만한 정도의 인상이었다. -사실 2집 구입 전에는 매체에 실린 리뷰를 간략하게 보기는 했다. 악평만 없으면 사야지, 싶었는데 '괜찮다' 이상의 리뷰가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2집을 아무 주저없이 사게 된 또 다른 이유로, 요새 가요 씨디들이 너무 빠르게 품절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후에 재발매는 너무 기약이 없다는 사실, 또 아울러 중고 가요 씨디 시장의 시세가 점차 오르고 있다는 현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요약하자면 음악 욕심이 아니라 음반 욕심도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것이다.

최근 가요 씨디들이 빠르게 품절로 빠지고 있다는 건, 씨디 시장이 부활하고 있다는 게 아니라 초판으로 아주 적은 수만 찍어낸다는 의미일 뿐이다. 그냥 주위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가 별 신빙성 없이 정리하자면, 메인스트림 초일급 애들이 초도로 한 5만장 찍어낼 거 같고, 인디들은 정말 많아야 오천장 정도인 거 같다.

오천장이라...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달려 들면 사실 금방 동이 날 숫자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음악이 좋다고 소문만 나면 저 정도 선에서는 소화해 줄 인구들이 안정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말도 될 것이다.

하지만 거기서 한발 더 나가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내부적으로 '이 정도 뮤지션에 이 정도 음악이면 초판으로 만 장 정도 찍으면 돼 또는 오천장 정도 찍으면 돼'하는 대략의 암묵적인 공식이 다 잡혀 있을 것이다. 재고가 남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 이상 새로운 수요도 기대할 수 없는 그 숫자말이다.

따라서 첫물이 싸악 빠지고 나면 이제 더이상 신품 시장에서는 구입하기가 힘들고, 부지런히 중고 시장을 돌아다녀야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또 재발매로 쉬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중고시장에서 높은 가격으로 형성된다는 것, 재발매 요구가 빗발친다는 것이 그 앨범의 재발매를 결정지을 수는 없다는 얘기다. 한 번 찍어낼 때 최소한으로 제작해야 하는 하한선이 있기 때문이다. 공장 가서 앨범 2백장 찍어주세요, 이런게 말이 안된다는 얘기다. 하지만 실제로 초도에서 구입하지 못하고 중고 시장을 떠도는 무리들의 수는 정말 한껏 잡아야 이삼백명이니 말이다.

이삼백명 보고 앨범 재발매를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천상 앨범을 구하는 길은 세가지다. 중고시장에서 계속 눈품, 발품을 파는 방법이 하나고, 또 하나는 경매 시장 (또는 일대일 장터)에서 일반 중고가보다 훨씬 높은 가격을 주고 구입하는 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염없이 재발매를 기다리는 일이 되겠다.

이 짓거리 하기 싫어서 왠만큼 평이 좋은 앨범은 다 그냥 나오자마자 사고 있다. 아, 얘기가 왜 이렇게 샜지?

그래. 못, 이거 음악이 좋았대니깐. ㅎㅎ

사실 난 이쪽 음악은 잘 읽어내지 못한다. 여기서 '읽어낸다'는 것은 이들을 비슷한 류의 다른 뮤지션과 비교하고 또 외국 그룹 누구의 음악을 기준으로 볼 때 이들에겐 어떤 특징이 있고, 시기적으로 외국에서는 언제 이런 음악이 큰 유행을 탔었고 하는 식으로 큰 줄기를 이해함을 뜻한다. 간단히 얘기하자면 흐름을 짚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설명은 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설명 없이도 음악은 흐르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지금 흐르고 있는 낯선 음악에 대한 호기심(거부감이 아니라)일 뿐이다.

앨범 제목이 Non-Linear다. 비선형... 내가 아는 한에서 적자면 말 그대로 선형이 아니라는 뜻이고, 함수의 공식에 따라 일반적인 패턴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왜 이런 어려운 말로 앨범 제목을 정했을까.

나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에는 음악을 더 꼼꼼히 들어본 후에야 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들의 음악이 어려운 제목만큼이나 '지적(知的)'인 것은 분명하다. 정념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길을 가는 느낌이랄까. 비슷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은 더 있겠지만 이런 지적인 느낌을 주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이들은 한국 대중음악계에 귀한 존재가 될 가능성이 아주 크다.

전체적으로 대중들의 귀에 친절한 앨범이 결코 아니지만 이 곡 '카페인'은 그 중에서도 가장 말랑말랑한 것이 여러 사람의 귀에 안착할만 하다고 느껴진다.

200선을 쓰면서 그냥 지나치기 힘든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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