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 자전거 탄 풍경 -너에게 난, 나에게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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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를 올릴까 말까를 두고 좀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곡 자체로 보면 이 200선에 올려도 전혀 손색이 없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유명곡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난 되도록이면 많이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 쪽으로 중심을 잡고 싶었다.

그래서 지난 몇 달 동안 다른 곡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간간이 이 노래에 대해 생각을 하곤 했는데 어제 이 앨범을 구입해 처음 들으면서 "쓰자"로 마음을 정했다.

한창 이 노래가 인기를 얻을 때 이들이 티비에 나와 라이브로 노래하는 걸 보며 무릎을 쳤던 게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 노래는 사실, 내가 그리도 꺼려하는 '착한 노래'의 전형적인 모습을 아주 뚜렷하게 지니고 있는 한계를 보인다. 물론 이 곡을 내가 여기서 소개한다는 것은 이 곡이 그 늪에서 다른 평범한 노래들과 함게 파묻혀 버리는 걸 과감히 거부하고 두 세 발짝 내디뎌 마침내 마른 땅으로 걸어 나왔다는 걸 뜻하지만 본질적으로 그렇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이 노래는 어떻게 해서 두 세발짝을 내딛을 수 있었는가? 이러한 기적적인 생환의 배경에는 멤버 중에서 가장 높은 음역의 보컬을 맏고 있는 김형섭의 가창력이 놓여져야 할 것이다. 높은 음을 맡았다고 해서 곡의 전면에 나와 티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저 뒤쪽에서 하이톤으로 계속 화음을 넣어 주는데 이 목소리가 그렇게 좋게 들릴 수가 없는 거다. 그리고 가만 들어보면 그냥 높은 음이라고 하기엔 서운할 정도로 '높은 음'이고, 또 짧게 조금 나오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곡 후반부부터는 내내 나온다고 할 지경인데도 전혀 어색함이 없다. 소극적으로 말하면 '코러스에 지치지 않는다'는 것 -코러스 때문에 듣다 지치는 곡들이 있다- 이고 적극적으로 말하면 '코러스가 곡 전체에 강력한 힘을 부여한다'고 하면 될 것 같다. 특히나 노래 맨 마지막에서 '그림처럼 남아 주기를~' 할 때, 그 엇갈리며 들어가는 김형섭의 코러스는 압권이다. 멋진 순간을 제공해 준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자, 여기까지 읽으면서 뭔가 찜찜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맞다, 난 지난 몇 달 동안 고민하다가 결국 어제 쓰기로 마음 먹은 것에 대한 얘기를 아직 하지 않았다.

지난 주말에 구입해서 그저께 배송되어 온 이들의 본 앨범은 실망 그 자체였다. 곡들이 후져서? 착한 노래가 너무 많아서? 그런게 아니다.

이 음반, 녹음이 너무 형편 없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사실때문에 쓰기로 마음 먹은 거다. 그 부조화 -매끈한 곡에 대비되는 거칠디 거친 녹음 기술-의 어이없음에 쓰고 싶은 욕구가 확 일었다. 하이음이 도드라지게 잡혀 있고, 덩달아 기타로 표현하자면 presence가 너무 쏴서 앨범을 듣는게 힘이 들 지경이다. 기타줄을 긁는데 그렇게 고막을 찢을 듯이 달려들면 듣는 사람이 그걸 어째야 되는 거냔 말이다. 사운드의 선예함때문에 듣는 사람이 그만 지친다는 얘기다. 또 이렇게 고음역에 비중을 많이 주다 보니 무음 상태에서도 잡음이 심하게 들린다. 이건 그러니까 간단히 얘기하자면 2001년에 1980년대 녹음 기술이 쓰인 것이다.

아주 말이 안되는 경우고 이 부분에 있어서는 무엇보다 '자전거 탄 풍경'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 엔지니어, 프로듀서 다 있었겠지만 이들이 무슨 아이돌 그룹 마냥 위에서 찍어주는 대로 활동하면 다인 그런 정도의 사람들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나름대로 자의식을 가지고 씬에서 20년, 10년 이렇게 활동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음질의 앨범이 소비자의 손에 들어가도록 가만히 놔둘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 녹음의 문제 때문에 특히 피해를 본 게 김형섭이 메인 보컬을 맡은 몇몇 곡들인데 원체 하이한 그의 보컬이 이런 녹음을 만나다보니 거의 듣기 힘들 정도로 부담스러운 목소리로 급락하고 만 것이다.

그러고보면 영화 '클래식' OST에서 들었던 '너에게 난, 나에게 넌'에서는 이런 어색한 녹음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불가능한 게 아닐 것이다. 적절한 리마스터를 통해 이들의 1집 음반이 이 끔찍한 늪에서 헤어나오길 바란다.


-참고로 대략 1990년 이전에 녹음되었다가 CD가 대중화 된 이후 CD로 다시 찍어낸 음반 중에 최악의 결과물로는 김도균의 'Center of the Universe' 앨범이 있다. 약간 과장하면 무슨 노래인지 식별이 불가능한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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