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 새 바람이 오는 그늘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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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년에 나온 앨범이다. 93년이면... 보자... 이문세의 인기는 사그러들고 있었으나 뒤를 이어 신승훈이 새로운 왕자로 등극하여 '역시 우리 귀엔 발라드가 최고!'라는 공식을 증명하고 있었고, 김건모라는 녀석이 나와 색다른 음색에 색다른 음악을 들려주기 시작하였으며 메인 스트림에 영향을 주는 존재는 아니었지만 김현식이 죽은지는 3년이 지났고 들국화는 공중분해된지 오래, 새로운 감수성으로 '자라서 큰 인물 되겠다' 싶었던 김현철은 서서히 맛탱이가 가던 시점이다.

93년은, 90년대 초반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가요판은 이제 주류는 주류, 비주류는 비주류로 갈라져 이둘이 서로 섞이기 힘든 양상으로 전개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상호 간에 인력의 교환도 없고 친분도 없는 완전한 남남. 밑에서 커서 위로 올라가는 가수들의 모습은 이제 점점 보기 힘든 시절이 된 것이다.

바로 이때 기특한 세 젊은이가 있어 이들이 그룹을 만들어 앨범을 냈으니 바로 이 곡 '그냥'을 부른 '새 바람이 오는 그늘'이다.

89년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1회 대회에서 '무지개'라는 명곡으로 대상을 수상하며 존재를 알린 조규찬이 몸담았던 그룹이기도 하다. 조규찬 외에 이준, 김정렬 이 두명이 그룹의 멤버인데 이준은 요새 뭘하는지 모르겠고, 김정렬은 (내가 이름을 잊은 어떤) 퓨전 재즈 그룹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조규찬은 이 앨범에서도 총 12곡 중 여섯곡을 작사, 작곡(한 곡은 작곡만)하여 큰 비중을 드러냈고, 단순히 곡의 수만이 아니라 그의 곡이 앨범내에서 영양가 높은 트랙의 다수를 이룬다는 점에서 역시 칭찬할만하다.

조규찬은 사실 자기의 음악적 색깔을 '발전적'으로 변화시켜오며 십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가수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아, 윤상도 같은 케이스로 봐야 할 것 같다. 이승환은,,, 모르겠다. 그의 음악은 발전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이상하게 내 귀에선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다른 장르에 눈길 주지 않고 십년 넘게 그것을 다듬어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종서, 김현철을 봐라. 한우물을 파도 그렇게 파면 안 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지 않는가.

데뷔 당시의 조규찬은 김현철科의 풋풋하고 감수성 뛰어난 음악이 주무기였으나 지금은 정련된 고품격 어덜트 컨템퍼러리를 하고 있다. 그의 최근 앨범에서의 편곡이나 곡 전개 같은 걸 보면 이제 경지에 올랐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보컬 역량을 갈고 닦아 지금의 뛰어난 목 컨트롤에 이르게 된 부분에는 큰 박수를 쳐줘야 한다. -자꾸 들먹거려 미안하지만 김현철 노래 하는거 보면 예나 지금이나 좀 깨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 소개하는 곡 '그냥'이나 같은 앨범의 '언제나 그렇듯', 유재하 가요제 대상 수상곡 '무지개'같은 곡을 듣다보면 이제 조규찬은 이런 음악을 다시 할 수는 없겠지, 하고 잠깐이나마 아쉬워지지만 한 가수에게서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더구나 그의 지금 음악은 지금대로 좋지 않은가 말이다. 풋풋한 감수성을 확인하는 작업은 이제 또다른 젊은 뮤지션에게 기대하는 것이 듣는 이의 올바른 예의일 것이다.

그의 건승을 빈다.


-p.s) 나중에 알게 된 사실 -이 앨범은 90년에 나왔다. 따라서 맨 앞의 가요계 정황에 대한 글 일부는 수정되어야 한다. 가령 93년에 데뷔한 김건모 얘기는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맥을 해치지 않으므로 수정하지 않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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