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gar -Pomp and Circumstance 1악장 (Daniel Barenboim, London Philharmonic Orchest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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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와 모짜르트, 베토벤을 빼면 난 아직 클래식은 듣는 곡만 듣는 편이다. 예를 들어 칼 오르프의 '까르미나 부르나', 슈트라우스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홀스트의 '혹성' 같은 곡들은 지휘자/연주자를 가리지 않고 모으고 있다. 또 바하, 모짜르트 같은 애들 것도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 있어서 그것들 역시 여러 판본으로 모으고 있다. 완전히 삘 꽂힌 건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인데 한 15종을 모은 거 같다. -그런데 이거 좀 무의미한 거 같기도 하다. 원전연주냐 아니냐 정도만 구분될 뿐 나머지는 듣다 보면 다 그게 그거인 거 같아서 말이다. 사실 클래식 매니아들에게 한 곡을 여러 연주자의 버전으로 모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이것도 생각해보면 정말 피곤한 일이당 ㅋㅋ
 
이렇게 '꽂힌' 곡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위풍당당 행진곡이다. 'pomp and circumstance'의 한국어 번역이 어찌 하여 위풍당당 행진곡이 됐는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곡과 제목이 잘 어울리는 것이 사실이다.

엘가는 결코 1류 작곡가라 할 수 없다. 이 사람을 베토벤이나 모짜르트, 바하와 같은 선상에 올려 놓는 일은 어지간히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시도하기 힘들 것이다. 지명도나 명망의 유무를 떠나 곡 자체만 놓고 보더라도 이것은 쉽게 인정이 되는데, 그의 곡은 무엇보다 안정감이 없다. 마구 뻗대기만 하고 어느 하나로 수렴되어 가는 느낌이 없달까. 부분 부분을 떼어놓고 보면 기가 막힌데 그걸 하나로 보다 보면 어색한 감이 절로 드는 것이다. 머리 속에 넘쳐나는 악상을 조화롭고 통일된 관점 속에서 균형 잡아줄 필요가 있었는데 그는 그 점에서 미흡했다.

이 1악장 역시 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있긴 하다. 하지만 중간에 그 유명한 '대한항공' 테마(-_-;;)가 흐르기 시작할 때의 형언할 수 없는 평온함은 대단한 것이다. 평온함 속에 역설적으로 힘찬 박동을 품고 있어 생겨나게 된 묘한 아늑함 덕분에 이 곡과 엘가는 불멸의 이름을 얻게 됐다.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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