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동서남북 -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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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그러니까 거시기,,, 프로그레시브락이다.

가끔 대형 음반 매장 같은 데를 가는 사람이라면 프로그레시브락 코너를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왜 그 구석탱이에 좁다랗게 껴들어 있는 코너 하나 있지 않던가?

그런데 이게 과연 어떤 음악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을 법 하다. 이참에 나도 프로그레시브 하면 뭐가 떠오르나 한번 생각해봐야 겠다.

음... 우선 앨범 커버는 매우 아름답거나 또 그렇지 않으면 매우 흉칙하기도 하고 또는 이도 저도 아니면 거의 무성의하다고 해도 될 정도로 대충 그려 넣은 식이고, 다음으로 앨범 값의 경우는 다른 장르에 비해 좀 비싼 편이고, 곡 리스트를 보면 곡 수가 얼마 되지 않은 대신에 한 곡이 10분이 훌쩍 넘기도 한 그런 음악... 몇가지 특징이 더 있겠다. 그 코너 앞에는 좀 회사원 같은 사람들이 많고, 옷차림은 후줄그레한데 눈빛은 초롱초롱해서 '얘네 뭐야?' 싶기도 하다. 아, 그리고 앨범의 겉 포장에는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 애청곡'이라는 문구가 적힌 광고 스티커가 유난히 많이 적혀 있다.

프로그레시브는 친절하지 않다. 멜로디도 부실하고, 곡도 길고, 웬만한 노래 안에는 다 들어 있기 마련인 이른바 '사비' -노래 중에서 시선을 확 잡아끄는 특정 부분을 뜻하는 업계 용어- 도 없다.

하지만 없는 게 아니다. 없어 보이는 거다. 처음 들을 때 잘 맛이 느껴지지 않는 것일 뿐이다. 굳이 프로그레시브에 대한 학습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이전에 여타의 장르들을 꾸준히, 진지하게 들어 왔던 사람이라면 프로그레시브의 매력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비틀즈만이라도 충분히 들어본 사람 정도면 프로그레시브에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 -역시 비틀즈는 위대하다.

하지만 우리나라 청자들, 비틀즈하면 예스터데이, 렛잇비, 헤이쥬드에서 딱 멈추기 마련이고, 그나마 관심있다는 사람들이래봤자 노르웨이언우드, 엘레너릭비, 와일마이기타젠틀리윕스에서 끝나는 것이고 보면 이런 얘기도 아직 멀고 먼 얘기일 뿐인 거다.

누차 얘기하는대로, 학습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는 말이다. 마음에 안 들어도 좀 꾸역꾸역 들어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이놈의 mp3 불법 유통을 근절시켜야 한다. mp3 파일 불법 유통의 해악이 여러가지이지만 그 중에 가장 큰 해악을 두 개 꼽으라면 당연히 첫째는 뮤지션이 받아야 할 적절한 보상을 가로막는다는 것이고, 둘째는 바로 음악에 대한 가치를 형편없이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용돈 모아서 산 씨디라면 마음에 안 들어도 한 번 더 듣고, 두 번 더 듣고 할텐데 -그러면서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되는 앨범을 발견할 수도 있을텐데- mp3가 초저가 또는 무료로 불법 유통되면서 음악은 앞에 30초 들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하드에서 지워버리는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그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한 게 없으니 지우는 데도 전혀 미련이 없는 거다.  

이런 세상에서 무슨 놈의 프로그레시브가 통하겠는가. 아니, 프로그레시브 운운할 필요도 없다. 장르를 막론하고, 귀를 잡아끌기 위해 싸구려 양념을 잔뜩 뿌려 입맛에 달달하게 포장해서 내어 놓지 않으면 곧바로 휴지통 행인데 그 어떤 진지한 뮤지션이 이 난관을 헤쳐나간단 말인가.

얘기가 길어졌다. 아무튼 이 노래' 나비'는 지난 1980년에 만들어진 후 몇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발표가 되었는데 발매 당시에는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다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차츰 진지한 청자들의 귀에 포획되어 '한국 최초의 프로그레시브 락'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기존의 가요와는 다른 차원의 작곡과 편곡, 연주를 보여줬던 당시 스물을 갓 넘긴 멤버들 중에는 우리에게 지금은 재즈/뉴에이지 피아니스트로 널리 알려진 김광민도 들어 있다.




- 불법 mp3 유통에 관해서 좀 더 글을 적고 싶은데 시간이 허락치 않아 다음으로 미룬다. 이런 저런 이유 때문에 불법 mp3로밖에는 음악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미안해하는 마음, 다음에 형편될 때 꼭 사준다는 최소한의 양심 그리고 공짜로 듣는 만큼 '후지다'느니 '음악을 먼저 잘 만들라'느니 '좋으면 내가 왜 안 사겠냐' 따위의 말은 하지 않는 염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남의 집 떡볶이 공짜로 먹어 놓고 '아, 썅 왜 이렇게 맛이 없어' 그러면 어이가 있냐 없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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