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교과서에서 이런 구절을 본 기억이 있다. 육사의 시에 대한 해설이었던 것 같은데 대충 뉘앙스가 이랬다. '이런 작가들이 있음으로 해서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 문학의 빛이 꺼지지 않고 지켜질 수 있었다. 아울러 친일 작가들의 (그 당시 그렇게 했던 것에 대한) 변명에 우리가 준엄하게 꾸짖을 수 있는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음악을 들을 때도 이 문장이 환기시키는 것과 비슷한 느낌을 갖게 되는 순간들이 더러 있다.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에 이르는 과정 속에서 우리가 아티스트라고 부를 만한 뮤지션 중에서 절반은 대중의 무관심 속에 그 자리에서 그만 주저 앉았고, 나머지 반 중의 반은 메인스트림을 향해 달려가다 그 사이에 끼어 이도저도 아닌 존재가 되어 버렸고, 남은 반 중에서 극히 일부의 몇몇만이 메인스트림에 성공적으로 안착해 이런저런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나머지들은 '증발'했다) 이게 바로 우리 음악계가 지난 80년대부터 겪어온 스토리의 한 전형이다.
혼미하고, 지저분하고, 정신 잠깐 놓으면 다시 흐름에 끼어들기가 불가능하게 되어 버린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90년대를 버티고 버티어 내어, 아니 오히려 그 시기 동안 더욱 견고해져 바야흐로 지금 2000년 대까지 한국 대중 음악의 높은 봉우리로 남아 있는 '뮤지션'이 바로 조동익이다.
일급 세션맨이자 편곡자, 작곡자로서, 또 한국 대중음악의 자존심 '하나음악' 레이블의 수장으로서 그가 지난 25 년간 우리에게 남긴 아름다운 흔적들을 뒤쫓아 가는 일은 고스란히 우리 음악의 최정상에 등정하는 일이다. 많이들 알고 있는 이병우와의 합동 작업 '어떤날'이 오히려 시작에 불과하다 할 정도로 그의 음악세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견고해졌다. 이러한 그의 든든한 이력 중에 김광석의 '다시부르기 2집'과 함께 이 독집앨범 '동경(憧景)'은 조동익 음악세계의 한 정점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높은 미학적 성취를 획득하기에 이르른다.
만약 음악에도 노벨상이 있다면 난 주저없이 조동익을 추천할 것이다. 그처럼 오랜 시간 동안, 그처럼 고른 완성도를 보여준 이는 일찍이 없었다. 유재하는 찬란하지만 우리에게 보여준 작품이 너무 적고, 신중현은 너무 들쭉날쭉하다. 그리고 조용필에게는 무엇보다 보편성이 부족하다. -이런 진술은 물론 훨씬 더 정교한 이론적 바탕을 밑에 깔아 두어야하겠으나 그건 다음으로 미룬다.
조동익, 그가 있음으로 해서 한국 대중가요는 눈물겹게 자존심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 대중음악에 대해 관심있는 사람, 또는 그렇지 않더라도 그저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이라면 당장 조동익의 흔적을 따라가 볼 일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동경'이 되어야 옳을 것이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앨범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듣는 이가, 한국 대중음악에서 이 앨범을 꼭대기로 하여 그 아래에 있을 수 밖에 없는, 한국 대중음악의 큰 부분을 뭉텅이로 포기할 수 밖에 없음을 의미한다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