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서태지와 아이들 -난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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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2때였나.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한 친구가 테잎을 하나 사서 들고 왔다. 어두침침한 스탠드 불빛으로 슬쩍 보니 세상에 그룹 이름이 서태지와 아이들이랜다. 이건 뭐 현철과 벌떼들도 아니고, 내 참. 한심한 눈빛 테잎 위로 한번 날려 주고 다시 열공 모드로 돌입했지.

그러고 나서 몇 주가 채 지나지 않아 세상은 뒤집혔다.

난 지금도 서태지가 이 땅의 대중음악계에 남긴 흔적들에 그리 마뜩찮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이지만 그의 음악이, 음악 그 자체로 이미 돋보이는 경지였다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가 최근 선보이는 이모 펑크나 그 전의 야리꾸리한 랩 메틀 같은 쪽은 내가 원래 그리 호감있어 하는 장르가 아니어서 별로 관심있게 듣지 않았지만 아이들 시절의 1집, 2집은 참 좋아하고 지금도 즐겨 듣고 있다.

그 시절엔 그에게 천재성이 있었다. 장르의 빈틈을 파고 드는 예리함이 살아 있었고, 자칫 평범한 작품이 될 수도 있었을 법한 노래들에 자신만의 색깔을 불어 넣어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는 능력이 있었다.

'난 알아요'를 지금 들어보라. 15년쯤(!!!) 된 노랜데 아직도 나는 살짝 긴장된다. 프로그래밍에 기타 반주만 살짝 입힌 건데도 그렇다. 음악에 집중하게끔 하는 뭔가가 있는 거다. 

이들이 처음 TV 출연을 한 것이 모 프로그램의 신인 소개 코너였는데 그 때 심사위원으로 나온 이중에 하광훈이라는 당대의 잘 나가는 작곡가가 있었다. 그는 이 노래를 듣고 난 후 "리듬은 좋은데 멜로디가 '너무' 약하다"는 얘기를 했다. 멜로디가 약한가? 그는 이쪽의 문법을 너무 몰랐던 것이다. 이런 리듬에서 멜로디를 더 가져가면 그건 잡탕밥이 되는 거다. 그게 바로 작금의 한국형 댄스 음악일 것이고 말이다. -그리고 사실 '난 알아요'도 내가 보기엔 멜로디 과잉이다.

서태지... 한 시대의 상징이었고 가장 막강했던 존재의 시작이 이 1집에 있고, 그 1집의 가장 인상적인 얼굴이 바로 이 노래 '난 알아요'였다. 이 리스트에 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내가 글 서두에 그의 음악적 행보를 탐탁치 않게 생각한다는 것은 사실 그와는 별 무관한 것이다. 이전에도 다른 글에서 쓴 것과 같이 그가 작금의 대중음악 환경을 책임질 필요는 전혀 없는 것이다. 찌질이들이 그의 음악을 흉내내서 한 건 올려보려 한 것이 어찌 그의 잘못이겠는가. 이 외에 그를 둘러싼 음악 외적인 행보에 대해서는 -잘 굴러가던 밴드의 멤버를 빼간다는가 하는 등의 것들- 내가 정확히 아는 바 없으므로 평가를 할 수 없다.

이런 것과는 별개로 그가 '거품'인가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를 신의 자리로 끌어 당기는 말의 머릿수는 점점 줄어들지만 그 남은 몇 안되는 말들이 더욱 전심으로 그 관성을 유지해 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마음에는 서태지가 있는 것일까, 서태지의 음악이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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