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김성호 -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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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노래는 대략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기존의 스타일을 다듬어서 완성형으로 올려 놓은 노래, 또 하나는 자기만의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는 노래.

하지만 이렇게 써놓긴 했어도 여기엔 일종의 수사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 힘든 측면이 분명 있다. 왜냐하면 이 둘 사이에서 아주 흔히 교집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신승훈을 가리켜 발라드의 황제라고 할 때 거기엔 그 이전의 이문세, 변진섭 등의 스타일을 충실히 계승했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작품에 자신만의 개성을 담아내지 못했다면 지금의 성공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했다는 것도 따질라치면 얼마든지 반론을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이미 했던 것이라는 비판이라든가, 또는 뭐 원론적인 차원에서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할 수도 있고, 뭐 등등... (내 판단으로는 이 비판에서 자유로운 한국 대중음악은 서태지와 아이들의 '하여가' 정도가 거의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찾아보면 더 있겠지만 -이미 여기 소개한 곡들 중에도 여럿 있고- 다 뒤져봐야 몇 개 안 나올게 뻔한데 굳이 사서 침울해지고 싶지는 않다.)

1991년. 이문세와 변진섭의 시대가 저물고 드디어 신승훈이라는 거물이 나타나 온 판을 독식하던 그 시점. 신승훈의 정반대 편에서 또다른 발라드의 형식미를 개척한 앨범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이 '김성호의 회상' 앨범 되겠다.  

신승훈이 세련된 멜로디에 감정이 잔뜩 묻어나는 목소리(흔히들 그의 창법을 가리켜 '애이불비'라고 표현하지만서도)로 메인스트림을 장악하던 그 때, 다소 촌티나는 멜로디에 소박한 편곡 -예술에서 '소박함'은 대략 '유치함', '싼티남'으로 연결됨-, 그다지 성숙하게 느껴지지 않는 무덤덤한 보컬로 꾸며진 이 노래가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덜 여물어 보이는 노래가 단촐한 기타 반주에 실려 노래 제목에 맞게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로 시작할 때의 그 깊은 음악적 감동은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초라하게 만든다. 강호를 떠나 자기만의 검법을 갈고 닦으며 독고다이로 세상을 떠도는 외로운 무사같은 이미지.

이 앨범을 내기 전에 이미 좋은 편곡자, 작곡자로 활동하던 사람이었을텐데 역시 앨범에 실린 곡들이 다 수준 이상이다. 구할 수 있는 사람은 구입해서 전체를 들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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