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슈가도넛 -몇해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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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디/모던락씬에 대해서 난 그다지 깊이 알지 못한다. 이것은 내가 원래 영미 모던락씬에 대해 갖고 있는 다소간의 편견과 그로 말미암은 시큰둥함에 기인하는 것인데 사실 편견이라기 보다는 진실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 편견 또는 진실이 무엇인고하니 이들 음악이 공통적으로 지닌, 유약한 보컬에 기댄 내면고백적인 가사과 클린톤으로 조용히 시작해서 중반부에 디스토션으로 옮아가는 곡 구성, 또는 이게 아니면 '말달리자' 류의 처음부터 그냥 앞만 보고 달렸지 스타일의 지르는 노래 이렇게 딱 이 두 스타일이 너무나 자주 남용되어 노래마다의 특성이 드러나지 않게 됨으로써 결과적으로 내게 일종의 피로감을 안겨 준다는 거다.

거기서 내 눈에 띄는 것이 델리스파이스나 언니네 이발관, 마이앤트매리, 허클베리 핀 정도인데 사실 이들도 전적으로 마음에 와 박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언니네 이발관은 다 좋은데 보컬이 내가 좀 싫어하는 타잎이라 그다지 정이 가지 않게 된 케이스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를 떠나 이 정도의 음악이면 나와는 취향이 다른 여러 사람을 감동시키에 충분하리라는 것 또한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그 이유 때문에 그들의 앨범은 다 사놓은 상태이고 말이다. -앨범 구입에 관해서는 이 이유, 즉 언젠가 나도 그들을 좋아하게 될 날이 있을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 말고도 최근 국내 대중음악 음반의 경우 때를 놓치면 영영 사기 어려워지고 있음이 크게 작용하기도 한다.  

내가 언급한 저 밴드들이 실제로 인디씬에서는 거의 머리급의 무게를 지닌 애들일텐데 그렇다면 자잘한 나머지 밴드들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편견은 대부분 매체를 통해 형성된 것이라 할 것이다. 티비나 라디오에서 언뜻 언뜻 들리는 그들의 음악은 나를 전혀 사로잡지 못했다. 많은 경우 좀 뻔했다.

하지만 다시 돌아보면 원래 스타일이라는 것은, 다시 말해 우리가 어떤 카테고리로 함께 분류하는 음악들은 당연히 비슷한 속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실제로도 나는 70년대 하드락, 그 뻔하게 비슷비슷한 음악들을 들을 때는 '이거 뻔하잖아' 이런 생각은 안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순전히 취향의 문제인가? 그럴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또 모르겠다. 내가 듣게 될 정도의 영미 하드락이면 거의 최상급의 밴드일 가능성이 크고 -내가 잘 났다는게 아니라 이역만리 촌구석 코레아까지 전파될 정도의 음악이라면 그 정도의 무게는 애초부터 지니고 있을 거라는 얘기다-  그렇기 때문에 그 비슷비슷한 놈들이 실제로는 다 저마다의 개성을 지니고 있음을 내가 알아차리기 쉬운 것일 수도 있다. '뭔가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앨범을 수입했고, 또 방송에 내보냈으므로 내 귀에까지 들렸을 거라는 얘기다. 하지만 국내 음악으로 보자면 그 정도의 개성을 지니지 못해도 내 귀에 걸려들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고 보면 바로 그 이유때문에 내가 특히, 한국 인디/모던락씬 전반에 별 애정을 못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가능성이 있지만 앞에 말한 취향의 문제만큼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래도 취향의 문제일 거 같다. 스타일의 남용은 암만 생각해봐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냥 남용이 아니라 '어설픈 남용'이 됐을 때 돌을 맞는 것일 뿐이다. AC/DC가 30년 동안 똑같은 음악을 한다고 해서 걔네들 욕하는 사람이 있나?

내 취향에 맞지 않다 보니 이 음악들을 소홀하게 듣게 되고, 그러다보니 이 밴드와 저 밴드를 가려내는 세심한 귀를 마련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단 성글게나마 결론을 이렇게 내리면서 지난 2000년 초 내 귀를 강렬하게 사로 잡았던 슈가도넛의 명곡 '몇해 지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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