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 곽상엽 -운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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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10주년 기념음반에 실린 곡이다. 6회 대회때 대상을 받았던 곡인데 대중들에겐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앨범을 구해서 듣기 전에는 '곽상엽'이라는 가수와 '운동장'이라는 노래, 둘 모두 알지 못했다.

사실 유재하 음악 경연 대회 출신으로 가장 지명도가 높은 뮤지션라면 조규찬, 유희열 정도이고 그 뒤로 고찬용, 나원주, 정지찬이 거의 다라고 할 정도인데 (피터팬 컴플렉스 보컬도 여기 출신이라더라) 즉, 메인스트림에서 그리 돋보일만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왜 그럴까? 이들의 음악적 자질이 메인스트림이 요구하는 것에 못미쳐서 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앨범에 실린 15곡은 어느 하나 뒤쳐짐없이 당대 메인스트림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 생각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 것은 이들의 음악이 애초부터 메인스트림에 '걸맞지' 않은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 난 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어떤 감성 같은 것들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시대는 이제 이런 류의 자기 고백적인 노래들, 지난 시절에 대한 애틋한 향수를 담은 노래들, 느린 템포에 올라탄 진중한 멜로디에 더이상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한다고 하는 노래들의 상당수가 '찬송가 같아요' 라든가 '너무 느려', '좀 그냥 이상해' 라는 식의 응답을 얻는 것을 보면 나의 이런 진단이 그리 틀린 것만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이들이 대회 참가 이후에 직업적인 뮤지션의 길을 택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 그리고 스타 시스템과 무관하게 활동하다 보니 홍보의 측면에서 대중들에게 다가서기 어렵다는 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보다 더 큰 인지도를 얻는 것을 방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건 보이지 않는 연좌제 -난 여기서 '숙명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의 뜻으로 이 표현을 썼다. 인기를 얻기 위한 감성, 전업 뮤지션으로서의 의지, 여기에다 홍보의 지원까지 이 셋이 모두 부실하다니!- 인가? 유재하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시작한 사람들은 스타가 정녕 될 수 없는 것인가? 나도 잘 모르겠다. 이건 아마 심사위원들의 취향, 심사기준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어떤 참가자가 굉장히 세련되고 음악적 완성도도 뛰어난 당대 인기 장르의 틀을 빌린 음악을, 따라서 유재하와는 거리가 먼 음악을 들고 나왔을 때 그에게 적합한 시상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중요하게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의 음악은 천상 이런 게릴라 방식으로 쓰여지는 소개글들을 통해서 발굴하고 재평가하는 것 밖에는 현 시점에서 더 널리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앨범을 처음 들을 때 난 이 곡에 그리 큰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걸로 기억한다. 조규찬의 '무지개'나 나원주의 '나의 고백', 고찬용의 '거리 풍경' 같은 곡들에 너무 큰 인상을 받아서, 곡의 중반부까지 다소 밋밋하게 진행되는 이 곡이 내 눈에 안 찼을 것 같다. 그러다가 이 앨범을 한참을 안 듣고 지난 여름에 몇년 만에 다시 듣게 됐는데 아! 좋은 노래의 힘이 새삼 느껴지는 게 아닌가.

좋은 노래에는 힘이 있다. '징징징징' 메탈리카 음악에만 힘이 있는게 아니다. 사람의 오감을 잡아끄는 힘, 다른 노래들이 범접하기 힘든 고고함 같은 것들 말이다. 나의 이 노래에 대한 첫인상이 시큰둥했던 것은 아마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이 노래가 그다지 특색이 없다는 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아무리 좋게 들어도 '이거 대상감은 아니다'라고 판단하는 것이랄까?

하지만 음악은 언제나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법. 중반까지의 밋밋함을 뒤로 하고 후반에 들어가니 드디어 자기만의 색이 빛나기 시작하고 있었다. 반음의 적절한 사용에 힘입어, 선율은 매끄럽게 이어나져가는 듯 하면서도 듣는 이에게 적절한 긴장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거기에 곽상엽의 약간 혀짧은 발음이 주는 묘한 매력과 코러스의 아련한 느낌, 이런 모든 것들이 더해져 또 하나의 명곡이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곽상엽'이라는, 하마터면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잊혀질뻔한 뮤지션이 이렇게라도 기억되는 데에는 유재하 음악 장학회가 이 앨범을 출반한 덕택이다. 그들의 기획과 음반사의 용단에 박수를 보낸다.



-이 앨범을 채우는 그 빛나는 감성들은 지금쯤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전업 뮤지션의 길을 걷는 소수를 제외하면 아마도 태반은 음악을 손에서 놓았을 것이다. 그들의 재능과 감성은 어디서 소비되고 있을까.

-곽상엽은 현재 CCM 계열의 작업을 주로 하고 있고, SM 소속으로 H.O.T 등에 곡을 준 바도 있다.

-앨범 정보 - http://www.maniadb.com/album.asp?a=132373#T8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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