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 김민기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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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가는 레코드 가게 사장님은 한국인들에게는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라는 것이 눈꼽만큼도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하며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인이 뽑은 팝송 베스트에서 수십년간 1등을 하는게 비틀즈의 '예스터데이'인데 왜 사람들은 그렇게나 좋아한다고 꼽으면서도 도통 비틀즈의 다른 노래는 들으려 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이 '예스터데이' 같은 멋진 곡을 만든 그룹이 만든 다른 곡들은 어떨까? 하고 찾아 듣는 데까지는 결코 이르지 못한다는 얘기다.

맞는 얘기다. '호기심', 특히 먹고 사는 것과 무관한 예술에 대한 호기심이 도통 없기는 없어 보인다. 정말 먹고 사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일까? 예술이 먹고 사는 것과 무관한 게 사실이긴 해도 그렇다면 흥청망청 번쩍거리는 술집의 네온사인 행렬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은 먹고 사는 것과 관계가 깊기 때문인가?

스타벅스 커피 두 세잔이면 정품 씨디 한장, TGI Friday 한끼 식사면 정품 씨디 세장을, 남자들은 (또는 훨씬 덜한 비율이겠지만 여자들도) 좋은데 한번 안가고 하룻밤만 참으면 씨디를 20장 가까이 살 수 있는 것이다. 이거 놀랍지 않은가. 자기가 어디에 가치를 두고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자기 몫이고 타인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지만 좀 균형을 맞출 필요는 있는 것 아닐까.

서설이 길었다. 한국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아마도 가장 굵은 글씨로 기록될 예술가인 김민기 역시 우리나라에서 비틀즈가 받는 대접과 별반 다르지 않은 대접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아침이슬'에 올인 하면서도 정작 그 노래가 실린 정규 앨범이나 그밖의 김민기 관련작들은 통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평론가들의 현학적인 말투, (글이 실리는 매체로서의) 일반 대중에 대한 접근성 부재 등에 대한 비판도 자주 제기되는 것이긴 하지만 이 앨범의 경우는 그런 것도 아니다. 검색 엔진으로 '김민기'만 쳐도 좋은 글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진다. 이건 명백히 듣는 이들의 태만이다.

똑같은 음이 계속 이어지지만 다른 코드 진행으로 인해 뭔가 묘한 느낌을 주는 앞 세마디를 시작으로 '죽음'의 이미지를 강하게 풍기는 가사가 김민기 특유의 무덤덤하고 일견 무성의해 보이기까지 하는 보컬에 실려 전해진다. 사실 김민기 같은 가수는 노래를 잘하는 가수라고 보기 힘들다. 아니, 외려 지극히 평범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 지경이다. 하지만 김민기의 보컬을 가지고 뭐라 말하는 사람은 없다. 이건 그의 음악이 그의 보컬에 적합하다는 뜻이기도 할테지만 그보다는 그의 노래가 보컬의 좋고 나쁨에 얽메이는 단계를 넘어 보다 높은 차원에서 말 그대로 '노래' 전체로서의 평가를 받는다는 말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고등학교때 함께 야영을 갔다 물에 빠져 죽은 친구를 기리며 만들었다는 이 서늘한 노래는 '아침이슬'의 보편적 정서와 시대적 열망을 담고 있지는 않아도 포괄적인 의미의 가사 덕분에 한 개인에 대한 만가에 국한되지 않고 보다 넓은 차원에서의 깊은 의미를 획득하기에 이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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