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 김종서 -그래도 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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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를 가리켜 한국 최고의 락커라 부를 때마다 난 낯이 간질간질해지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데 그래도 그 말이 전혀 뜬금없이 나온 것이 아니라면 그 배경에는 아마도 이 앨범이 가장 든든한 뒷배로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이 앨범에서 김종서는 시나위와 솔로 1집 시절의 들뜨고 다소 미숙했던 보컬을 극복하고 드디어 자기의 목을 컨트롤 하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그리고 이 앨범 이후에는 목소리에 치중하기 보다는 새로운 작곡 스타일에 보다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보컬리스트라기 보다는 한명의 뮤지션으로 거듭 나려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나로서는 그 사이에서 중용을 지키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앨범은 말 그대로 well made 앨범이다. 미끈하게 잘 빠졌다. 좋은 곡과 세션진의 좋은 연주, 그리고 김종서의 좋은 보컬이 합쳐져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앨범이 탄생했다. 하지만 well made는 전적인 칭찬의 말이 아니다. 뭔가 허전하다는 얘기다. 주제 의식의 빈곤함이랄까, 뮤지션의 자의식의 빈약함이랄까.

웰 메이드라는 말은 어덜트 컨템퍼러리 같은 장르에는 쓰지 않는다. 어덜트 컨템퍼러리에는 원래부터 주제의식이라는 게 없으니까. 하긴 한 평론가가 어떤 영화를 보고서 시큰둥하게 '그냥 웰 메이드네요' 했더니 다른 사람이 '웰 메이드, 그거만 해도 어디야' 했다는데 그 말도 맞는 말이다. 웰 메이드는 사실 비난받을 것도 아니고 어찌 보면 높은 차원의 예술 작품이 되는데 필요한 그저 최소 조건일 뿐이다. 자의식은 넘쳐 나는데 예술적 형상화의 과정이 너무나도 뒤쳐진 작품이 또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물론 둘 다 결여된 작품들도 수두룩하다.

각설하고, 좋은 앨범이다. 이 정도의 완성도를 갖춘 한국 대중음악 앨범을 찾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네 파트로 이루어져 총 13분에 달하는 마지막 7번 트랙까지, 수록된 모든 곡이 고른 완성도를 보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바로 '그래도 이제는'이다. 김종서의 완숙한 보컬이 빛을 발하며 그의 경력에 있어 정점을 찍게 되는데 이 곡을 듣노라면 요즘의 그가 안쓰러워 내가 다 몸둘 바를 모르겠다.

80년대와 90년대를 거쳐 한국 드럼 세션의 최고봉이었던 배수연의 드럼과 함춘호의 기타, 이태윤의 베이스 등 최고 수준의 세션맨들의 백업에 김종서의 가장 예리하던 시절의 목소리가 만나 또 하나의 좋은 곡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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