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백지영 -사랑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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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분석과 평론 이전에 존재한다. 논리의 힘으로 아무리 파헤친다 해도 어떤 예술 작품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결정적 이유는, 그 순간의 아득함은 결코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은 언어(의 표현상)의 한계라기 보다는 차라리 예술의 한계이다. 예술의 핵심은 (설령 설명이 가능하다 한들) 설명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평론가 출신인 사람이 창작에 뛰어 들었을 때 그는 거의 수작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예술이 인간의 합리적인 언어로 어느 정도까지는 설명되어져야 한다는 내 주장도 분명한 참일 것이다. -평론가 출신인 사람이 창작에 뛰어 들었을 때 그는 최소한 평작은 한다.- 가령 고흐의 해바라기와 내가 고2때 그린 해바라기는 격이 다른 것인데 우리는 이 둘 중에서 어떤 게 더 나은 작품인지 그리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세계 65억 인구에게 물어본다면 특별한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극소수를 제외하고서는 모두 고흐의 작품에 손을 들어줄 것이다. 보편적인 심미안이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다. 이 보편적 심미안의 존재를 믿기에 오늘도 서점에는 '이 시대의 명반', '유럽의 명화 이야기'. '추천도서 50선 해설' 따위의 안내 서적들이 새로이 꽂히게 되는 것이다. 한명의 독자, 즉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책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예술이 합리적인 언어로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그런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 개인의 무감함과는 별개로 아주 슬픈 일일 것이다. 우리의 감각을 사로잡는 저 수많은 예술품들이 아무런 가치도 평가받지 못한채 '그냥 좋다', '그냥 별로다'로만 얘기되고 마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내가 쓰는 이 글들도 '내 맘대로'라고는 했지만 사실 순전히 내 맘대로는 아니다. 대부분은 여러 평론가 집단으로부터 좋은 작품으로 인정 받은 것들이고, 그렇지 않다면 좋은 아티스트로 인정 받긴 했으되 그 노래 하나로 놓고 볼 때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진 작품들이다. 요컨대 노래나 가수 둘 중의 하나는 최소한 믿을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방향을 잡고 있어도 가끔 이런 틀에서 벗어나는 곡들을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이렇게 일반적으로 평론가들로부터 그다지 좋은 반응을 못 끌어낸 노래 중에 내가 유독 좋아하는 노래들의 공통점을 보니 '노래를 잘한다'는 거였다. 물론 다른 요소들도 있겠지만.

지금의 '사랑 안 해'도 마찬가지. 올 한 해 노래방 최고의 히트곡이었다고는 하나 이 앨범에 우호적인 시각을 보낸 평론가의 글은 본 적이 없고 사실 내가 봐도 '객관적으로' 뛰어난 곡은 아니다. (아직 앨범은 사질 않았다.) 뛰어나지 않은 가사에, 멜로디는 가사보다는 좀 더 좋으나 역시 '사로잡는' 경지까지는 아닌 이 노래... 합리적인 언어로 간단히 이 노래를 평가하자면 별로다. 점수를 쳐 줄 건덕지가 별로 없다.

하지만 이 노래 좋다.

어느날 밤 운전하고 돌아오던 차 안에서 중간부터 듣기 시작한 이 노래는 '그냥' 좋았다. 백지영같았던 가수가 디제이 멘트에 의해 백지영임이 확인되었을 때, 난 그다지 귀에 안 들어오던 가사는 머리 속에서 비우고 후렴구이자 이 노래의 제목이기도 한 '사랑 안 해'와 그녀의 특별했던 과거만을 직접 결부시키며 이런 저런 상상을 했다. '아픔이 컸구나. 이제 다시는 사랑을 안 하는 건가' 뭐 그런거. 지금 가사를 다시 보니 그때의 그 사건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지만 이미 노래의 인상은 박혀버렸다.

노래 참 애절하게 잘 불렀다. 좋은 음악이 되는데에 노랫말의 수준이나 목소리가 들어가느냐 아니냐는 전혀 필수적인 것이 아니지만 때로는 기껏해야 범작인 음악이 오로지 보컬의 힘만으로 수작이 되기도 한다. 아름다운 경지를 보여준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계속 smile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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