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Bad Taste -아무 생각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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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관한 글을 쓰기가 점점 힘이 든다. 글로 풀어내기가 버겁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이전에도 해당 노래와 별 상관 없는 내용으로 글을 쓴 적이 없는 건 아닌데 이제는 그렇게 쓰는 것도 부담이 된다. 불현듯 어떤 내용이 떠올라 그걸 재료 삼아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그 과정이 즐거웠는데 지금은 뭔가를 쓰려고 '애를 써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래서 근 몇 달 간 이 코너가 개점 휴업 상태로 쭉 방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200선은 읽는 이들이 어떻게 받아 들일지는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좀 거창하게 말하면 '인생의 작업' 비스무리한 무게를 두고 있는 게 사실이다. 처음엔 이런 마음 눈꼽만치도 없이 그냥 재밌게 시작한 것인데 시간이 흐르고, 글이 쌓이고, 지난 글들을 다시 읽고 하다 보니 그런 무게감 또는 부담감을 스스로 지우고 있는 것 같다. 헌데 이런 엄숙주의도 그리 나쁜 것은 아니다.

엄숙주의에는 분위기를 경직시키고, 또 지금처럼 작업의 진도를 느리게 하는 단점이 있지만 더디 가더라도 어떤 일을 완성도를 헝끄러트리지 않는 선에서 무사히 끝마치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덤 아닌 덤으로 좀 더 큰 시각에서 작업을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여유도 줄테고 말이다.

사실 이 노래에 관한 글을 처음 쓰려고 했던 때가 벌써 작년이다. 그렇게 오래 된 줄 몰랐는데 지금 보니 2009년 12월 1일에 첫 등록을 했다고 되어 있다. 글 제목하고 앨범 자케만 걸어두고 비공개로 놔두었던 것인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너무 굼뗬다는 자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더 분발하라고 스스로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어떤 노래가 전설이 되고, 상징이 되고, 한 시대의 증언이 되고 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기적적인 순간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 노래와 뮤지션을 둘러싼 갖가지 일화들, 관련 업계 종사자들의 찬사, 그 작품으로부터 말미암아 그 이후의 모든 것들에게 내려 앉는 영향력의 안개 같은 것들 말이다. 허나 이와 같은 아득한 평가의 격상이 이루어지기 위해선 그 무엇보다 그 작품이 '어느 정도' 알려져야 한다. 우리가 흔히 '전설' 운운할 때는 그 곡과 뮤지션이 뭔가 베일에 가려지 있고, 뮤지션의 경우라면 요절을 하면 금상첨화고, 지금은 그 앨범을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고 하는 그런 상황들이 따라다니는 법인데 이것도 어느 정도여야 하지 지나칠 정도로 알려지지 않은 작품은 이미 전설이 될 자격조차 얻지 못하는 것이다. 비록 극소수의 사람에서라도 얘깃거리로 입에 오르내려야 뭐가 되도 될 거 아니겠나 말이다. (그리고 사실 극소수만 열광하는 '전설' 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극소수에게서만 사랑 받을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다분하다. 그런 대접을 받을만 하다는 얘기다.)

지금 이 앨범도 그렇게 보자면 '전설'이되 전설이 아니다. 우리 대중음악 사상 인디씬에서의 첫 원맨밴드 음악이며 이후에 발표될 홈레코딩 및 자주 제작 앨범들의 모태라고 할 수 있는 앨범인데 지금 이 시점, 2010년에 이것의 존재를 알고 있는 사람이 이 땅에 얼마나 될까하는 의문이 든다. 더구나 이 앨범이 2009년에 재발매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비범한 작곡과 예리한 세계관, 형언할 수 없는 자유로움으로 서태지의 정반대 편에서 한국 대중음악을 빛낸, 흔한 말로 '저주받은 걸작'이다. 들어보면 알겠지만 서태지와 같은 친화력은 없다. 또한 서태지만큼 깔끔하거나 세련되지도 않다. 하지만 우리가 '대중음악'이라는 네 글자에서 느껴 마땅한 그 어떤 기운, 속박에 얽매이지 않은 채 자기의 속에 담긴 느낌을 밖으로 생생하게 드러내는 그것, 바로 '자유로움'이라는 절대 기준으로 볼 때 이 앨범은 세상 그 어떤 앨범보다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좋은 음악을 듣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좋은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댓가를 돌려 주어 그가 또 다시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게 하는 것이다. 얼마나 쉽고 좋나. 나도 좋고, 뮤지션도 좋고.
 
하기사 정품 100장에 9만원도 안되는 클래식 전집도 버젓이 공유 싸이트에 올라오는 것을 보면 할말 다했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가 앨범 판매자들 입장 생각해 줄 이유는 없지만 100장에 9만원, 50장에 6, 7만원 이렇게 판다는 것은 판매자 입장에서는 '니네 이래도 다운 받아 들을래? 정말 인간적으로 이런 건 사서 좀 들어주면 안되겠니?' 이런 거 아니겠나?

있는 걸 몰라서 안 들었다면 이제 알았으니 좀 사서 듣자.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벅스 같은데 가보면 한 달에 만원 돈으로 전곡 감상도 다 되고, 공유 싸이트 가면 무손실 음원으로 100원이면 잔돈이 남는다. 옛날처럼 가슴 졸여가며 샀다가 낭패를 볼 일도 없다는 뜻이다. 들어보고 좋으면 사자. 사줘야 또 만들 거 아닌가. 할 것도 안 하고 진짜배기들 다 말려 죽인 다음에 '요즘은 들을 거 없어. 맨날 아이돌 판이야' 이러고 있으니 참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싶다.

오랫만에 쓴 글이 잔소리로 끝나게 되어 마음이 좋지않다. 이런 얘기 안 쓰기로 다짐했었는데 쓰다보니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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