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 H2O -많은 이별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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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그 짜릿하던 시절에 메탈 키드로 이력을 시작한 네 명의 걸출한 보석들이 90년대에 들어 보다 성숙하고 단정한 그러면서도 뮤지션으로서의 자의식은 철철 넘치는 기가 막힌 음반을 세상에 공개했다. 이미 두 해 전에 내놓았던 2집 앨범에서부터 이러한 음악적 변화를 예고했던 이들은 이 3집 앨범 'Today I'을 통해 모던/얼터너티브 계열의 세계적인 흐름을 한숨에 따라잡으며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기운을 이 땅에 불어넣게 된다.

'락'하면 '메탈'이었고 동시에 가죽 패션과 체인 그리고 기타 속주가 자동 연상되던 그 시절에 이런 음악을 그것도 이정도의 완성도로 만들어 냈다는 것은, 일체의 수사로서가 아니라, 기적이다.  

음악은 기술이 아니라 -물론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이들은 기술도 뛰어나다- '무엇을 얘기할 것인가', '무엇을 들려줄 것인가'의 지극히 기본적인 문제에서 시작해 다시 거기에서 끝난다는 진리를 체득한 것이었을까? 이미 평론가 박준흠이 지적한대로, '나를 돌아보게 해'에서 들리는 다음과 같은 자기 성찰적인 가사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한국의 락 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이들 네 명으로서의 H2O가 이 앨범 이후로 더이상 활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회색 해는 넘어가고 밤과 별이 머리 위로 떠오르면
 고개 들어 노래해야만이 느낄 수 있는 노래를 하지
 언제부터 우린 이다지도 막연히 기쁘지도 슬프지도 않은 노래를 불러야 했을까"

헌데 모던락의 모던함(!)으로 안팎을 두르고 있는 이 앨범에서 우리가 또 주목해야 할 곡이 바로 이 '많은 이별들은'이라는 진짜배기 발라드다. 허접 밴드들이 극강 뽕필 멜로디에 헤비 기타 리프랑 애드립 대충 섞어서 신파 모드로 부르는 얼치기 발라드 말고 진짜배기 말이다. 기타 애드립도, 한국인의 감성에 호소하는 멜로디도, 폭발적인 고음도 없지만 이 곡을 듣고 나면 '아, 이런게 락 발라드였구나' 싶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이건 김종서의 '지금은 알 수 없어'와도 또다른 것이다. 락커의 노래라는 사전 지식을 배제하고 들었을 때 김종서의 곡이 그냥 발라드로 인식되기 쉬운 것과 달리 이 노래는 비슷한 구성이면서도 어떤 '락'스러움이 분명 꿈틀대고 있다. -난 이렇게 말로 설명하기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부분이 바로 뮤지션의 성정과 애티튜드가 작용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락 밴드가 전해줄 수 있는, 특히 한국으로 국한한다면, 발라드로는 이 노래를 뛰어 넘을 곡이 없을 것 같다. 이런 노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저 모두의 불행이다. 뮤지션에게나 듣는 이들에게나.


-음악이 올려지질 않으니 모든 것이 허황하다.

-오해를 피하자. 허접 밴드의 락발라드와 김종서의 '지금은 알 수 없어'는 무관한 것이다. 김종서의 노래는 이 곡과의 유사한 구성때문에 비교된 것이지 허접한 락 발드의 예시로서 언급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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