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델리 스파이스 -종이비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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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들이 심혜진이 진행하던 '파워인터뷰'라는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적이 있다. 출연자로 뮤지션이 나오면 음악도 라이브로 몇 곡 들려주고, 또 패널로 나온 이들이 꽤나 깊이있는 질문도 던지곤 하던 프로였다.

어떤 질문이 오갔는지는 지금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때 델리 스파이스가 불렀던 노래 중에 딱 한곡만큼은 내 머리 속에 오롯이 남아 있다. 진도가 아니라 원주에서 봤던 기억이니까 아마 2001년 이전이었을텐데 난 그때까지만 해도 델리 스파이스에 대해 그다지 많이 알고 있던 상태가 아니었다. 사실 델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인디 음악 전반에 대해 많이 알지 못했고, 또 이런 무지를 넘어 외려 그닥 탐탁치 않아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을 정도였다. 그때의 내게 한국 인디라는 것들은 대략 무기력과 자기반복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시큰둥하게 보고 있는데 -아마 델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내가 원래 '인터뷰'라는 장르(?)에 대해 호기심이 많아서 계속 봤었을 것이다- 마지막 이었나? 노래를 한 곡 부르는 데 좋은 멜로디에 좋은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곡이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이런 표현을 쓸때마다 읽는 사람들이 '전체적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좋아? 그게 뭐야?' 싶어한다는 건 잘 알지만 좀 더 객관적으로 쓰기가 참 어렵다. 곡의 내용과 형식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었다고 하면 좀 나을까? 어렵군.

그때 델리가 부른 노래는 '종이비행기'라는 곡이었다.

'오늘도 난 접어 날려 보내네, 이 작은 종이비행기를. 누군가 이걸 보겠지, 잡아 주겠지 하는 기대를 갖고. 오~ 그냥 지나쳐 버릴 뿐인걸' 라는 가사로 시작한 곡이 간주를 지난 후반부로 갈 때 쯤 객석 여기저기서 종이비행기가 날아 들었다. 그때 아마 노래는 이 부분을 지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날 우연히 창밖을 보았어. 하늘에 무수히 날려진 종이비행기를. 그래 너희 역시 접고 있었던 거야"

뮤지션은 무대에서 저런 가사를 읊고, 팬들은 그 사랑하는 뮤지션을 위해 객석에서 그 사랑을 증명해 보이는 일. 그건 정말 기똥차게 멋진 것이었다. 종이비행기가 무대를 가득 매우는 그 시간 동안 수줍음 많은 델리의 얼굴 위로 웃음이 번져가고 있었다. 기뻤을 것이다. "우리의 노래가 이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구나" 싶은 마음 아니었을까?

이게 바로 내가 기억하는 티비에서 본 가장 멋진 라이브 퍼포먼스였다. 좋은 공연은 뮤지션 혼자만으로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객의 열렬한 박수 그리고 합창이 어우러질 때 99점에서 100점이 되는 법이다.

음악애호가로 모인 4명의 청년이 이제 한국 인디씬의 맏형이 되었다. 같은 시기에 출발하여 함께 활동하던 이런 저런 밴드들이 이제 모두 씬을 떠난 것에 대해 외로움과 위기감을 느낀다고 여러차례 밝힌 바 있는 그들이지만 난 그들에게 다소 무책임한 어투로라도 꼭 말해 주고 싶다. '좋은 음악은 오래 남는 법'이라고 말이다.

나는 내가 서있는 자리에서 그들을 지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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