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rowitz -Scriabin -Etude in D sharp minor, Op. 8 No.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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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듣기의 경우, 걸음마를 떼고 난 후 똥오줌을 가릴 정도는 이제 된 거 같다. 말 그대로 '닥치고 듣는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이것 저것 족보도 없이 듣고 있는데 이 짓도 수 년 간 계속 하다보니 어느 정도는 듣는 귀가 생기는 듯도 하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간혹 어떤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인물들이 출현한다. 당대의 평균을 훨씬 뛰어 넘는 그런 인물들 말이다.

당구에서는 지난 시대의 꿀르망이 그랬고, (국내로만 한정하자면) 농구의 허재가 그러했고, 새 천년 초반 몇 년 간의 임요환도 역시 그러했다. 해당 분야에 대한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과 또 그것을 실제로 구현해 낼 수 있는 뛰어난 기술을 지닌 명인들만이 비로소 이런 경지에 오르는 게 아닐까.

클래식 피아노의 경우 아직 많은 음악을 들어보진 않았다. 그저 유명한 아티스트들 위주로 많이 알려진 앨범을 들어본 게 다다. 개인적으로 피아노라는 악기는 직접 연주하면 무지 재밌을 거 같은데 듣는 것만으로는 매력을 잘 못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피아노에 관련된 연주자와 앨범의 리뷰들을 보다 보면 어떤 공통적인 인상 하나가 와서 박힌다. 하도 비슷한 정보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어 나에게만큼은 지극히 명징한 그 어떤 명제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건 바로 블라디미르 호로비츠라는 이 사람이 클래식 피아노의 세계에서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 존재는 하도 거대하여 다른 명인들마저 아예 그냥 초라하게 만들어 버리는 것 같다. 가령 박하우스를 가리켜 '건반의 사자'라고 부를 때 여기엔 '호로비츠가 맘먹고 후려칠 때에 비할 바는 안되겠지만'이라는 말이 숨어 있는 듯하고, 빌헬름 켐프를 두고 '차분하고 정돈된 시정의 세계'라고 상찬할 때에도 기껏해야 '호로비츠의 그것에 필적하는' 이런 말이 감춰져 있는 듯하다. 그러니까 호로비츠는 저마다의 피파2008에 은밀히 저장되어 있기 마련인 능력치 99로 모든 항목이 조정된 선수인 것이다! 박지성의 심폐와 호날두의 골 결정력, 호나우도의 순간 스피드, 지단의 패싱 능력 이런 모든 것들을 한 몸에 갖춘 그런 선수... 내가 가진 이런 이미지를 증명할 문구들을 직접 여기에 옮기는 게 설득적이겠지만 막상 찾으려면 이런 작업이 또 한세월인지라 생략할 수밖에 없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아무튼 중요한 건 내게 이런 인상이 이미 깊이 박혀 버렸다는 것이고 이제 난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정보였는지 아니면 하나의 거대한 허구였는지를 긴 세월을 두고 차분하게 탐구해 볼 생각이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이건 아주 힘든 일이 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호로비츠의 모든 앨범들을 들어봐야 하고, 또 클래식 피아노의 세계를 수놓은 수많은 아티스트들의 대표작들을 꼼꼼히 들어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다. 그 후엔 이것들을 '비교'해야 할 것이고 마지막엔 내가 받은 느낌을 글로 풀어써야 한다... 이쯤되면 거의 좌절이 예비되어 있다고 해도 좋은 것이다.)

무의미해 보이는 이런 작업에 착수하는 이유는 거듭 말하거니와 그에 대한 평가가 너무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모노에서 스테레오로 바뀌고, 그 와중에 SP가 LP로 다시 씨디로 정착하기까지 그 기나긴 60여 년의 세월 동안 최고의 자리를 내어놓지 않았던 그에게는,

과연 무엇이 숨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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