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이 -치질 (조중동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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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보다 못한 너희들 종이 사지 않겠어.
아무리 급해도 닦지 않겠어 쓰지 않겠어.
너희들의 거짓말 듣지 않겠어 믿지 않겠어.
단돈 300원도 주지 않겠어 보지 않겠어"


촛불집회로 대표로 하여 지난 5월부터 두 달 넘게 계속되고 있는 전국민 의식 개혁 프로젝트(-_-;;) 의 여러 작업들 중에서 한참 후의 미래에까지 깊고 큰 의미를 남길 것이라고 내가 예상하는 것은 다음 두가지이다.

하나는 포괄적인 차원에서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기억에 남으리라는 것. 촛불을 든 수십 만의 사람들이 모여서 광화문 앞 10차선 도로를 함께 거닐던 기억들, 지난 30년 간 사회의 망나니에 다르지 않았던 예비군들이 앞에서 최루 가스를 대신 맞아주고 대오를 지켜주는 듬직한 오빠들로 재탄생하게 된 기억들, 막고자 한다면 광화문 앞 그 넓디 넓은 도로도 컨테이너를 이어 붙여 막을 수 있다는 그 신비한 상상력과 실천력이 주는 씁쓸한 기억들, 뼈저리게 반성한다는 대국민 사과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급작스런 원천봉쇄와 천막 철거, 폭력 진압으로 기어를 바꿔 끼우던 정치권의 조삼모사 속성에 치를 떨던 기억들, 소년소녀들이 사회의 전면에 나설 가능성 -이건 80년 광주 이후로 처음 아니던가!-을 재확인하게 된 달콤쌉싸름한 기억들...

이런 것들은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집단으로 느끼고 겪은 것들 -더구나 강렬하게-은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이런 포괄적인 차원에서의 기억들과 함께 또하나 큰 의미를 지니는 성과라면 바로 안티 조중동 운동의 대규모적인 확산이 아닐까 한다. 90년대 말에 고개를 들고 2000년대 초반에 반짝하였으나 그 이후로 다시는 처음같은 울림을 얻지 못했던 이 운동이 뜻하지 않게도 이명박 정부의 삽질을 거름 삼아 바야흐로 2008년, 드디어 전국민이 돌보는 묘목이 된 것이다.    

우리 사회 모든 추악함의 집결지이자 온상이며 재생산 기구이기까지 한 이 오사리 잡것들에 대해 만시지탄이나마 사회 구성원들이 그 문제를 인식하게 된 것은 정말이지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사회에 준 축복이 아닌가 싶기까지 하다.

조중동에 대한 문제의식 없이 그 어떤 사회의 진보도 이루어 낼 수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리 다르지 않다. 다만 머리에 헛물이 들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흔히 얘기하는 '결정론의 덫'에 빠지는 것처럼 느껴져 거기에 지레 겁을 먹고서 과거형으로 표현버린 것뿐이리라. 

그래서 거추장스럽기만한 조심스러움을 내 던지고 다시 한번 목에 힘을 주고 말하거니와, 문제는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아마 멀지 않은 미래에까지 조중동이었으며 조중동이고 또 조중동일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들의 위세도 많이 꺾여 나간 것 같다. 광고주가 많이 떨어져 나가 언감생심 그들의 1면 하단에 이제 듣보잡 기업의 상품이 실리기도 하고, 얼마전에는 '다음'에 기사를 주지 않는다는 막장 짓까지 공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결정의 어리석음과는 별개로 '나 이제 너랑 안놀아'는 원래 찌질이 짓의 극치 아니던가- 그들의 기사와 만평 밑에는 조롱과 비난이 팔할이고 그들이 예전에 냈던 기사들은 이제 눈밝은 네티즌들에 의해 다시 발굴되어 오늘의 표변한 입장과 나란히 실리게 된다.

유시민씨는 '우리 정치는 한나라당이 발전하는 만큼 발전한다'는 얘기를 한 적 있는데 한나라당만큼 추악하며 또한 그들만큼 거대한 힘을 지닌 조중동에도 이제 같은 얘기를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정말이지 아무런 정서적, 논리적 부담없이 '우리 사회는 조중동의 세력이 약해지는 만큼 발전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데 깨어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동참할 일이다. 다행히 한국 대중음악계에도 이미 90년대 말에 이를 노래한 이가 있다. 루시드 폴의 조윤석이 솔로 여정을 시작하기 전에 몸 담았던 밴드, '미선이'의 노래다. 여기서 우리는 루시드 폴에서보다 더 예민하고 날 선 조윤석을 만날 수 있다.

이제 그럼 그 신문들 때문에 '치질'에 걸린 사람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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