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 윤도현 밴드 -이 땅에 살기 위하여

|
사용자 삽입 이미지



락 스피릿이라는 단어가 있'었'다. 요새는 잘 안 쓰이고, 쓰인다면 그 글은 대부분 시시껄렁할 가능성이 높다.

락을 한다는 사람들이 '응당' 갖추어야 할 신념, 세계관 따위를 뜻하는 이 단어는, 억압에 대한 반항, 배고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각, 부의 축적에 대한 거부감,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모든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뮤지션이 생각하고 행하는 모든 동작 하나하나에 그것이 자연스럽게 녹아 묻어나는 그런 정서 및 행동 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 락의 역사에 있어 제대로 된 주인을 만난 적이 없고, 애써 찾아야 겨우 손에 꼽을 정도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몇 중에서도 일생을 걸고 그 스피릿을 지킨 이는 없었다.

결국 허당이라는 얘기다.

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나타날 필요도 없고 말이다. 메인스트림, 언더씬을 막론하고 우리가 이름을 들어볼 수 있는 뮤지션에게서는 락스피릿 이런건 애시당초 포기하는 편이 옳다. 그들은 어차피 '돈 벌려고' 하는 것이다. 뭐 어떻게 다르게 표현하든 그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락스피릿은 뒷뜰 주차장에서 동네 친구들이랑 기타앰프에 베이스 꽂고 맨땅에 존나게 헤딩하고 있는 애들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락스피릿이라는 모호한 표현으로 음악 만드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괜한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가 집고 넘어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저런 것이 아니라 그의 음악이 그의 삶에 얼마만큼 포개지느냐 하는 것일 뿐이다.

2집의 '이 땅에 살기 위하여'를 부르는 윤도현 밴드는 락스피릿을 아직 잃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거듭 말하거니와 내가 이 곡을 좋은 곡이라고 치는 이유가 이 노래에서 락스피릿이 엿보이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난 락스피릿에 아무런 의미도 두지 않는다.

이 곡은 거칠고 싱싱하면서도 후지지 않다. 이게 이 곡의 뛰어남이다. 뭔가 엉성한 느낌이 있지만 그것마저도 장점으로 만들어 버리는 곡을 찾기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윤도현의 아직 젊은 시절, 그 거칠면서도 풋풋한 목소리로 하드코어하던 시절의 박노해를 읊어대는 것만으로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이 곡을 듣노라면 락스피릿이라는 것이 모호하긴 해도, 그렇게 모호한만큼 가끔 눈에 언뜻언뜻 보일 때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 아닌 깨달음을 얻게 된다.



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