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동물원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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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물원이다. 이 동물원 2집에는 흔한 말로 버릴 곡이 하나도 없는데 의외로 (아니면 당연히?) 모든 곡이 처음부터 귀에 박히는 것은 아니다. 듣는 이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새롭게 느껴지는 곡들도 있고 또는 이런저런 음악 듣기의 편력을 거친 후에야 비로소 가치가 느껴지는 곡들도 있다.

이 앨범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가장 크게 얻었던 곡은 타이틀이었던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였는데 난 이 노래가 인기를 얻었던 그 배경이 참 궁금하다. 무슨 음반판매에 있어서의 전략적인 음모가 있었다거나 하는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당최 우리나라 대중이 좋아할 싸이즈가 아니었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외국을 보면 물론 음악의 수준도 부럽지만 그보다 더 부러운 것은 그것의 가치를 알아주는 청자들이 항상 유력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찬 밥 신세에 지나지 않고, 사실 어떨 때는 그런 무관심이 이해될 법도 한 뮤지션의 음반이 본국이나 또는 영미권에서 적지 않은 인기를 얻는 것을 볼 때, 또는 주류의 가장 바깥쪽에서 활동을 하는 뮤지션들도 베스트 음반을 척척 내는 것을 볼 때 이런 부러움은 극에 달한다.

알아주는 사람이 있으니 음악을 계속 하는 것이다.

'흐린 가을에...'도 그렇다면 진지하게 음악 듣는 사람들이 존재하던 마지막 시기에 운좋게 발표되어 폭넓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었다고 대충 해석할 수 있겠다. 2007년 1월에 똑같은 음악을 발표한다고 할 때 대중의 반응이 어떨지를 상상해보면, 대충 쓴 저 답이 크게 틀리지는 않았던 것이었다고 다들 생각할 것이다.

이 앨범에서 말랑말랑하게 귀에 박히는 곡은 일전에 쓴 '혜화동'과 이 곡 '잘 가', 그리고 '별빛 가득한 밤에' 정도인데 뒤의 두 곡은 박기영이 만들고 부른 노래들이다.

요새 가끔 티비에서 보는 그는 이제 긴장이 풀린 느슨한 이미지이지만 이때만해도 빛나는 서정과 팽팽한 긴장을 함께 가슴에 품고 있던 진짜배기였다. 다음과 같은 가사를 보자.

호수위 던져진 작은 조약돌처럼
차가운 이별의 말 남기고
떠나간 너를 그려보다
작은 설레임 큰 파문되었으니

차마 작별의 말 못하고
눈물어린 눈짓으로 보내니

잘가 잘가 지난날의 설레임
이제 내겐 다시 없으리

이토록 완전하게 이별을 인정하는 가사를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지난날의 설레임이 이제는 더이상 없다니, 앞뒤 사정 내 아는 바가 없지만 저 문장 하나만으로도 정말 가슴이 미어진다.




-음질이 좀 후져서 '이거 왜 이래?'하고 발매사를 확인해 보니 '화음레코드'라는 곳에서 발매된 것이다. 그런데 http://www.maniadb.com에서 확인해 본 바로는 씨디 발매사 목록에 이 회사는 없다. 내가 짝퉁을 샀을 가능성이 높은 거 같다.

잡음도 약간 들어가 있고 볼륨 조정에도 실패한 케이스다. 만약 정식반들도 이렇다면 어서 리마스터 버전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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