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 천지인 -청계천8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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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는 사회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소득으로 보면) 상위 계층이고, (권력의 점유로 보자면) 기득권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지지만 어쨌든 또래의 다른 직종 친구들보다 많은 돈을 벌 가능성이 큰 게 사실이고, 또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가진 자에게 권력이 따라 가는 것도 당연한 일일 터다. -권력은 구매력에서 나온다.

하지만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지는 몰라도 한의학, 또는 한의사라는 직업은 서양의학에 견주어 영원한 마이너리티로 남을 가능성 또한 크다. 주류를 전복하기란 어려운 일이며 더구나 그 주류는 터무니없지 않다. 여기서 한의학이 마이너리티라는 내 판단은 한의사의 수입이 양의사의 수입을 능가한다고 해서, 또 한의사의 수가 양의사의 수를 능가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서의 문제이다. (실제로 양 집단의 수입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 한의사가 적을 것이다. 의사수로는 월등히 적다.) 그리고 여기엔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내는 서양의학의 뛰어난 외과적 처치에 대한 선망이 어느 정도 깔려 있고 말이다. -난 외과 계열에 점차 지원자가 줄고 있다는 그 쪽 사정이 참 안타깝다.

하지만 '마이너리티'라는 단어를 이렇게 정서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실제로 지금 이 시간에도 밥을 굶는 사람이 있다는 현실을 감안할 때 일종의 사치일 것이다... 그래도, 내 생각엔 우리가 이렇게 정서적으로라도 '마이너리티'임을 체험하는 것은 길게 봐서 득이 더 많을 것 같다. (내가 '길게 봐서'라고 이야기 하는 것은 그 정서적 체험이 실천적인 행동으로 옮겨 지기까지, 또는 그렇지 않다면 일상의 아주 세세한 부분에서의 미묘한 변화들을 야기하여 그것이 어느덧 돌아보니 나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라는 깨달음을 스스로 얻기까지 긴 세월이 필요할 것이라는 점에서 그리한 것이다.) 왜 득이 더 많은가.

마이너리티로서의 정서적 체험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는 아마도 '열등감'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세계 60억 인구 모두에게 있을 것이다. 한의사는 양의사에게, 연세대 출신은 서울대 출신에게,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면 국내파는 유학파에게, 효성그룹 회장 아들은 이건희 아들에게, 최동원은 선동렬에게, 찰스 바클리는 마이클 조던에게......

바로 이 때 마이너리티로서의 자각은, 내가 꼭 다다르고자 하는 '저 한사람'이 아닌 나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연대의 모색과 재분배의 실천을 가능케 해주기 때문이다. 상처 받은 사람만이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법이다. 이런 자각없이는 그에게서 '올라가려는' 욕망 외에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  

특히나 상위계층, 기득권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인식의 전환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을까. 99가 풍족하고 1이 부족해도 그건 부족한 거다.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부족한 존재들이다. 그래, 모두 다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깨달음이지만, 예외없이 그렇다는 사실은 우리 마음을 좀 편안하게도 해주지 않는가.

논리가 부실해도 내 글의 선의를 읽는 이들이 이해해주기 바라며, 이런 긴 글을 쓰게 한 90년대 민중가요의 가장 뛰어난 미학적 성과인 천지인의 '청계천 8가'를 소개한다.

-논리가 부실하다는 것은 '마이너리티'로서의 자각이 다른 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정으로 연결될만한 필연이 없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건 역시 삶의 긴장을 유지하는 것, 착한 마음을 잃지 않는 것, 그리고 역지사지...

일반화의 오류임을 인정하고 대충 말하자면, 기득권이라고 할만한 집단들은 대개 FTA에 찬성하는 편이었을 것이다. 한의사 집단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어쨌든 나를 포함한 대부분들은 어제의 '미 한의사 대량 유입' 이런 기사를 보고서야 비로소 반FTA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창피해야 할 일이다.


파란불도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람들
물샐틈없는 인파로 가득찬
땀냄새 가득한 거리여 어느새 정든 추억의 거리여

어느 핏발 서린 리어카꾼의 험상궂은 욕설도
어느 맹인부부 가수의 노래도
희미한 백열등 밑으로 어느새 물든 노을의 거리여

뿌연 헤드라이트 불빛에 덮쳐오는 가난의 풍경
술렁이던 한낮의 뜨겁던 흔적도 어느새 텅빈 거리여

칠흑 같은 밤 쓸쓸한 청계천 8가 산다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가를
워  비참한 우리 가난한 사랑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끈질긴 우리의 삶을 위하여.




-1집에 실린 원곡을 더 좋아하는데 앨범을 가지고 있지 않다. 지금 흐르는 2집 버전은 원곡에 비하면 50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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