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 이병우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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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그 자체로는 무언가를 적시하여 나타낼 수 없다. 이병우의 '자전거'를 듣고 자전거와 티끌만큼이라도 관련된 무엇인가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더구나 클래식 곡들의 경우라면 제목이 아예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즈에 이르러서는 거의 상상의 나래 수준이다.

하지만 음악이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적시할 수 없다고 해서 그것이 무의미하다거나, 쓸모 없다거나 또는 우리의 삶과 관계없다고 말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에도, 스피커에서 흐르는 저 음표들은 나의 삶을 충만하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고보면, 음악은 그 자체로는 바보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 자식, 애당초 그런데에는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음악은 음표와 쉼표로서 족했던 것이다! 음표를 얼마나 아름답게 가꾸고, 그 음표를 쉼표와 얼마나 잘 어울리게 하느냐 하는데에만 관심이 있는 거였다.

결국 아무것도 적시할 필요가 없었다. 이건 음악만의 특권이며 생명이다. '자전거'를 들을 때 느끼는 감정은 자전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도 그 자체로 좋은 것이다. 그저 어떤 아련함, 아쉬움 같은 느낌만 줄 수 있다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래서 좋은 연주곡이란 듣는 이들 일반에게 보편적인 그 어떤 감정과 함께 각 개인만의 개별적인 감상을 동시에 환기시키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음악의 본질은 가사가 아니라, 제목이 아니라 音 그자체인 것이다. 만약 '음악은 다른 예술 영역보다 인간의 감정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그 자체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는 내 생각이 맞다면, 그건 다름 아니라 이러한 음악 자체의 모호함 때문일 것이다. 어떤 주제 의식이나 예술가의 의도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음으로써 얻어지는 그 자체의 편안함. -그렇게 볼때 연주자들이 자신의 솔로 앨범을 낼 때 가사가 있는 곡 위주로 하느냐 연주 위주의 곡으로 하느냐를 두고 고민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러므로, 좋은 노래(가사가 있는)들은 대부분, 이미 좋은 음을 바탕으로 한 채 그것이 연주곡이라고 가정했을 때 사람들이 느낄만한 보편적인 어떤 감정을, 가사라는 첨가물을 이용하여 그 감정의 테두리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정한 경우이다.

난 음악의 그런 모호한 자유로움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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