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김정호 -이름모를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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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영화를 보다 보면 이런 영화야말로 진정한 성인영화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말은 그것이 성인만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는 뜻이기도 하고 애들이 봐서는 안되는 영화라는 뜻이기도 하다. 일상의 비루함이 여과 없이 -때론 너무 과장되어 보이기도 하지만- 드러나는 그의 영화는 애들에겐 (너무 심심하거나 또는) 너무 잔혹한 영화일 것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음악 얘기를 해보자. 음악에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좋아지는 노래들이 있다. 아니면 음악을 점점 더 많이 들을수록 좋아지는 노래가 있다고 하는게 맞을까? 잘 모르겠다. 그냥 둘이 서로 섞여서 어떤 새로운 취향을 만들어 간다고만 편하게 말해두자. 사람들이 최고로 꼽는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라든가 비틀즈의 'Elenor Rigby' 같은 곡들... 처음 들을 때는 뭔가 편하지 않은 느낌 비슷한 것이 생긴다.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 같은 것들... 하지만 시간이 좀 흐르고 어느날 우연히 그 곡들을 다시 만났을 때 느껴지곤 하는, 처음 들었을 때는 잡아내지 못하던 어떤 '다른' 느낌.

앞서 말한대로, 안 들리던 것이 들리기 시작하는 데에 어떤 힘들이 작용했는지는 나로서도 잘 모르겠다. 결과만 놓고 보면 흔한 말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고 하면 되겠지.  

'이름 모를 소녀'가 나에겐 그런 경우이다. 어릴 때는 그 맛을 느끼지 못했으나 이제는 조금씩 알 것 같은 곡. 전주의 바이얼린이 전해주는 비장미와 음절을 툭툭 끊어서 던져버리듯 부르는 그의 처연한 목소리...

좋은 음악들이 가지는 힘 중의 하나는 바로 스스로 어떤 이미지를 창조해 낸다는 점일 것이다. 가사에 묘사된 정경을 눈에 떠오르게 한다는 그런 단순한 뜻이 아니라 노래 자체에서 풍기는 어떤 기운이 듣는 이에게 다가가 노래만의 형상을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아! 이 노래에서 난 서늘한 푸른 불빛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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