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시나위 -크게 라디오를 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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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비교적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즐기는 편이다. 몇년 전부터는 클래식에도 관심을 좀 기울이는 편인데 베토벤 '합창'이나 바하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 같은 음악들을 듣다보면 '아, 클래식이 정말 위대하긴 하다'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다. 심지어 가끔씩은 클래식이 가장 뛰어난 형태의 음악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할 정도인데 이러다가도 이언 길런이 불러 제끼는 'highway star'나 'child in time', 또는 로니 제임스 디오가 부르는 'stargazer' 같은 락 고전을 듣노라면 '아! 역시 내가 평생 좋아할 음악은 이쪽이야~~~' 하는 마음과 함께 마치 외도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발그레해지는 것이다.

그렇다. 락이야말로 나의 생명. 나는 찌그러진 기타 소리와 심장을 울리는 드럼, 공간을 메우는 베이스와 가슴에서, 목에서 쥐어짜는 보컬의 거친 목소리가 만들어내는 음의 포위망을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헤비메탈 밴드이며,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으므로 당연히 최장수 헤비메탈 밴드이기도 한 시나위의 1집이다. 지금의 기준으로 들어보면 레코딩, 특히 기타톤 녹음에 있어 심각한 결점을 노출하고 있는 본 앨범이지만 우리나라 락음악 역사에서 가장 굵은 글씨로 쓰여져야 할 이 커다란 밴드의 불완전한 시작은, '임재범'이라는 걸출한 보컬리스트의 목소리로 인해 전혀 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본인들은 락을 한다고 하지만 들어보면 락 비스무리일뿐인 여타의 찌끄래기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목청. 락을 가리켜 남성적인 음악이라고 할 때 그 명제를 가장 충실하게 증명해주는 것이 바로 임재범의 목소리일 것이다.

'목청'이라는 기본 스펙에서 생겨나는 이 근원적인 차이. 그리하여 이 목소리는 후대의 한국 락 보컬들에게 두고 두고 짐이 되기에 이르른다.


-곰곰 생각해보니 '기본 스펙'이라는 표현엔 다소간, '날 때 부터 주어진 능력' 같은 뉘앙스가 들어 있는 것 같다. 내가 저 표현을 쓴 건, 임재범이 저런 목청을 얻기 위해 기울였을지도 모를 혹독한 훈련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보컬을 평가하는 다른 자질 -예를 들면 가사 전달력, 음역, 호소력 같은 것들-에 앞서 가장 근본적으로 먼저 평가되어야 하는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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