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들국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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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각종 포털의 메인에 '대중음악 명반 1위'라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클릭해 들어가보니 단순히 자극적으로 헤드라인만 뽑아낸 게 아니었다.

이미 90년대 말에 박준흠씨을 위시한 여러 관계자들이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을 뽑은 바 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행한 조사였다. 그때도 웹진 '가슴'이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이번 선정 역시 경향신문이 기획을 했을 뿐 핵심 실무는 '가슴'에서 행한 것 같다.

해외에서도 이런 류의 명반 100선 따위의 리스트들이 거의 매 해 여러 매체들을 통해 발표가 되곤 하는데 역시 이런 류의 조사에는 음반업계에 대한 일종의 배려같은 것이 들어있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불법 음원이 음악 유통의 거의 대부분을 잠식한 나라에서는 이런 류의 발표를 통해 '니네 그래도 이런 앨범들은 사줘야 되지 않겠니?'라는 암묵적인 메세지를 전하는 것이 큰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각설하고 명반 100선에서 1위는 들국화의 1집이 차지했다. 별도의 예비 리스트가 없는 상태에서 52명의 선정위원 중 45명이 추천했다고 하니 이제 내가 놀라는 것은 87%가 추천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나머지 13%는 뭐냐는 것이다. 각 선정위원마다 200장 이내로 추천하도록 했다는데 거기에 이 앨범을 누락시킨 것이다. 무려 200장 중에 말이다. 이건 뭐랄까, 좀 미친 거다. 나같으면 대중음악 싱글 200선을 뽑으라고 해도 여기서 최소 3곡은 뽑겠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 사람들이 이 앨범을 빼고서 대체 어떤 앨범을 추천했는지 그게 그저 궁금할 따름이다.

전에 이들의 2집에 실린 '오 그대는 아름다운 여인'을 소개하면서 들국화는 싸이즈 자체가 달랐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맞다. 동급 최강 이런게 아니라 그냥 독보적 최강이다. '어? 이상하다... 흐름상 이런 애들이 나올 수 없는데?'싶은 느낌이랄까. -물론 동시대적으로 음악을 들었던 사람들, 그러니까 지금 이제 막 사십대 중반이나 오십대로 접어드는 사람들은 들국화 1집의 탄생에 지금의 내가 보이는 정도의 격한 반응을 당시에 보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들이 땅속에 묻혀 있다가 86년 어느날 짠!하고 나온게 아니라 이미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유망주로 인정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이들의 활동의 예의 주시하고 있던 사람이었다 하더라도 이들이 모여 1+1을 10으로, 100으로 만들어버린 것에는 놀랄만 했을 것이다.

들국화의 주된 색깔은 전인권과 최성원이 결정지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비틀즈에는 폴 매카트니와 존 레넌 말고도 조지 해리슨이 있었다. 그의 'something' 같은 곡이 폴과 존의 틈바구니 속에서 얼마나 독창적인 빛을 발하는지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그럼 이제 여유가 되는 사람은 머리 속에 아주 약간만 공간을 더 비워 조덕환이라는 이름을 기억하기로 하자. 한국대중음악 명반 100선에서 자칫 2위나 3위가 되었을지도 모를 이 앨범을 1위로 올려 놓은 곡이 그의 손에서 나왔으니 말이다.


-마지막 말은 이 곡이 그만큼 절대적으로 뛰어나다는 뜻은 아니다. 이 앨범이 다른 앨범들을 제치고 압도적인 1위가 된 데에는 적절한 러닝 타임을 채우기 위한 이른바 '끼워넣기식 트랙' -요즘 어딜 보니 이런걸 가리켜 필러(filler)라고도 하던데 이런건 되도록 안쓰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이 '전혀' 없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인 바 난 그런 관점에서 방어적인 뉘앙스로 말한 것이다.




-누차 말하거니와 이 코너의 글들은 다른 곳에 썼던 글을 맞춤법이나 문맥의 자연스러움을 고려하는 수준에서 최소한만의 수정을 거쳐 다시 올리는 것이므로 시간적으로 실제 사건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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