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스쿨 -Julian (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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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나 원래 이런 놈이야!

아, S.E.S의 '달리기'랑 박지윤 '환상'을 꼽을때도 이렇게 당혹스럽지 않았거늘...

그동안 나름 '내맘대로'를 표방하면서도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인정될 수 있을 만한 건덕지를 지니고 있는 노래들을 소개해 왔는데 이 노래는 아무래도 예외로 쳐야겠다.

작사, 작곡도 다른 애들이 해줬고, 기타와 베이스를 들고 있는 멤버 사진이 어엿하게 실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참여 뮤지션 크레딧엔 세션맨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지네들이 연주를 직접 하지 않았거나 아니면 했더라도 극히 기초적인 부분에서만 했다는 얘기다. 그렇다고해서 보컬의 역량이 탁월한 것도 아니고 앨범 전체적으로 색다른 개성이 있어서 앞의 단점들을 못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가요계의 뿌리 깊은 '일본풍 빌리기'에 기대어 그쪽에서는 십수년도 더 전에 유행을 끌었던 컨셉을 뒤늦게 빌려 나왔다고 보는게 맞다. 간단히 말해 기본 이하라는 얘기다.

2001년에 나왔다고 음반 정보 싸이트에 나와있는데 맞는 것 같다. 병원 생활을 하면서 간간이 가던 당구장에서 들었던 기억이 나니 말이다. 그 당시 이 노래에서 나의 귀에 가장 인상적으로 박혔던 건 가사 중의 '토마토와 버섯을 찾자. 제일 빨갛고 부드러운 놈으로'라는 부분이었다.

어떤 특정한 성질을 지닌 사물에 대해 '~한 놈' 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 노래가 노리는 팬층을 고려할 때 부적합하지 않은가 말이다. '~한 놈'이라면 보통 지역적으로는 전라도의 '아따, 큰 놈으로 좀 주쑈!'따위가 떠오르기 마련이고, 세대적으로도 따져도 나이 지긋한 사람들이나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 표현은 스쿨이라는, 20대 초반의 깜찍한 여성 보컬이 나와 공주같은 복장을 하고서 앙증맞은 목소리로 수줍게 짝사랑을 고백하는 노래에서는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냥 안되는 거다.

그런데 저 어색한 표현이 자꾸 귀에 와 걸리는 거다. '제일 빨갛고 부드러운 놈으로~ 두근두근 뛰는 내 마음 어떡하면 좋을까~~~'

아, 어떻게든 한번 와 박히면 빼기가 어려운 법이다.

그렇게 한 번 내 레이다 망에 들어온 후부터는 이제 노래의 멜로디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고백컨대 난 원래 이런 류의 멜로디에 약하다. 스쿨과 비슷한 음악을 하는 일본 그룹 '린드버그'의 멜로디 라인에 내가 사족을 못쓰는 일이나 구본승의 '미워도 다시 한 번' 같은 평범한 노래를 내가 은밀하게 좋아해 왔음을 봐도 그렇다.

그래, 난 원래 그런 놈이었던 거다. 프로그레시브니 아트락이니 브리티쉬 포크니 하는 것들도 다 좋지만 아후~ '줄리앙'같은 깜찍 발랄, 멜로디 만빵 앞에서는 그냥 무릎에서 힘이 쫙 빠지는 거다.  

오랜만에 코너 이름에 걸맞는 곡을 올리게 돼서 내 마음이 한결 가볍다. 하하하.


-이 앨범에는 'Julian'이 있고 'Julian II'가 있다. 당시 티비에 주로 나오던 버전은 Julian II이다. II에 더 스트레이트한 맛이 들어있는 반면 그냥 Julina에는 각종 효과음, 변조음이 많이 들어가서 좀 다채롭다면 다채롭고 산만하다면 산만하게 느껴진다. 기본 트랙이 서로 바뀌었어야 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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