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ade Fire -City with no children (부제 -내 기억이 맞는가? 아니면 내가 선별적으로 기억을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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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전 부터 생각해 오던 내용이다. 부제는 다 쓰자면 제목란이 너무 길어져 줄여서 모호하게 쓴 것인데 더 구체화하자면 중고교 교과서에 실리는 문학작품의 19금 수위에 대한 나의 기억이 과연 맞는 것인가, 아니면 진실과 무관하게 내가 선별적으로 기억 또는 재구성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을 갖게 된 건 재수할 때였(던 걸로 짐작이 된)다. 국어 시간에 내가 중학교때 배웠던 작품이 나와 반가운 마음으로 보는데 이상하게 처음 보는 단어가 나온 것이다. 

'앙가슴'

지금 이 글을 쓰는 도중에 그 작품이 뭔지 잘 기억이 안나 검색을 해봤다. '소나기' 였나 싶었는데 아니어서 더 찾아보니 '요람기'가 맞는 것 같다. (첫 문장 '기차도 전기도 없었다.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에서 상황 종료됐다)

아무튼 내가 배운 작품인데 그 뜻을 모른다...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건 앙가슴이다. 내가 배우고도 모를 수는 없는 단어인 것이다. 결단코.

그때 나는 아마 어렴풋이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내가 중학교 때는 이 단어가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어... 다른 단어로 대체되거나 아예 삭제되거나 하는 식으로 어떻게든 편집되었을 거야... 이건 확실해'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땐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서 달리 깊이 생각해 보질 않았다.

그러다가 또 다시 재수, 삼수 시절...

이름도 유명한 '사랑 손님과 어머니'를 다시 읽어 보는데 아, 머리가 쨍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옥희네 집에 들어온 지 한 달 쯤 된 어느날 아저씨는 옥희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밤에 엄마하구 한 자리에서 자니?"

아, 이거 뭔가요~~~ 

중학교 때라면 이미 나도 알 건 다 아는 나이. 이렇게 대놓고 껄떡대는 장면을 심상하게 지나쳤을 리 만무하다. 재수할 때 비로소 내가 반응했다는 건, 그렇다... 이 부분 역시 당시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았던 것이다. 

'왜?' 

'왜 잘랐을까'

답은 뻔하다. 

1번, 수업 시간에 괜한 소요를 일으키지 않으며 (상상해 보라... 조숙한 몇몇 녀석들이 킥킥대기 시작하고, 코 흘리는 친구들은 그들에게 왜 웃냐며 물어보는데 대답하기 머쓱한 그 놈들은 안 가르쳐주고 그럼 코찔찔이들은 선생님에게 물어보고... 마침 또 선생님은 젋은 여교사고... 뭐 그런 시나리오다) 

2번, 학생들의 정서 순화를 위한 (언젠가 알게 될 거라면 최대한 늦게 알게 하자)

교육 당국의 깊은 배려였던 것이다. 이런 의혹 및 그 이유에 대한 추정은 나이가 더 들어 '제도 교육은 사회 기득권 계층의 이익에 봉사하는 교육이기 쉬우며 아주 종종 도덕적으로 보수적인 성향을 띄게 된다'는 일반론을 배우고 또 체감하게 된 후 거의 확실한 진실로 내게 자리잡았다.
 
하지만 '사랑 손님'의 경우 단편 소설이라 하더라도 분량상 전문을 다 실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테고 그렇다면 편집하는 과정에서 해당 부분을 누락시켰을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지금 무슨 엄청난 거라도 발견한 사람처럼 호륻갑을 떨고 있는 나로서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지만 별 수 없다.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엊그제 또다시 상기의 의혹이 합리적인 것임을 증명하는 사례를 만나게 된 것이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내 나이 또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배웠을 김소운의 '특급품'이라는 수필이 바로 그것이다. 바둑판 중에서는 비자 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치는데 그 중에서도 한번 상처가 난 후 스스로의 힘으로 그 상처를 복원해 낸 것을 특급으로 쳐준다는 내용, 다들 기억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을 던져 보자.

위 작품을 읽어본 사람 중에 아래의 문구, 단어들을 작품 속에서 본 기억이 있는 사람이 있는지 말이다.
 
애정 윤리의 일탈, 애정의 불규칙 동사, 주홍 글씨, 채털리즘, 로렌스, 스탕달, 애정 윤리, 전쟁미망인, 납치미망인, 청교도

나만 처음 보는 것인가?

그렇다. 이 작품의 주제는, 일체의 과장이나 곡해 없이 '전쟁 통에 남편 잃은 여인들에게 자유 연애를 허하라'였던 것이다. 이 정도 되면 표현의 격조를 빼놓고 본다면 수필이라기 보다는 가히 시평이나 격문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 아닌가. 

'상처를 스스로 극복한 비자 바둑판이 특급품이 되듯 인생도 그렇게 위기를 극복해 감으로써 더 높은 차원으로 완성되어 간다 '라고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아예 다른 얘기가 되는 셈이다. 

나는 글의 뒷부분(애정 윤리의 일탈 어쩌구 하는 부분) 이 교과서에는 누락되거나 편집, 심지어 교과서 저자들에 의해 윤문되어 마무리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기억도 그렇고 상식적으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기 적합하지 않은 내용인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 판단이 맞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일단 당시 교과서가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고 또 아무리 우리나라가 막 나간다고 해도 남의 글에 손을 댄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굉장히 죄스러운 일이며 결정적으로 내 기억 자체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적으로 인식하지 못한 내용에 대해서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극도의 무신경함을 드러내던가 말이다. 어린 아이는 '감자'를 읽고 복녀가 '일 안하고도 품삯 많이 받는 인부'가 되었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도대체 알 수도 없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 당시의 나도 그런 아이였을지 모른다. 엄마랑 같이 자는지 따로 자는지를 묻는 사랑 아저씨의 질문에 옥희처럼 '쓸데없는 질문만 자꾸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를 일이다. 

합당한 의혹과 적당한 근거가 있음에도 이것의 짝으로 부실한 기억과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는 인간 두뇌의 선천적 한계가 엊갈려 그냥 이렇게 업데이트 늦는 쓸쓸한 블로그의 하루 벌이 글감으로 전락함이 못내 안타깝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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