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Angry Men -감독; Sidney Lum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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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7월 17일 11시에 EBS에서 방영 예정인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

TV가 있는 자, 놓치지 말지어다...

아래의 두 글은 예전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이다. 두 글 모두에 내용의 노출이 있다.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건너뛰는 편이 좋을 것이다. 두번째 글은 2005년, 황우석의 논문 조작 사건과 관련하여 당시 MBD PD수첩에게 가해졌던 여론의 돌팔매에 염증을 느끼고 쓴 것이다.
 

1.
미국. 슬램의 한 소년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사건에 대한 배심원들의 마지막 평결 회의가 열린다.

배심원들은 모두 더운 날씨와 에어컨도 없는 푸대접에 잔뜩 화가 나 있고, 제대로 변호사도 선임받지 못한 그 소년은 이제 사형대로 갈 일만 남은 듯 하다.

중립적으로 보이는 12명의 배심원들은 하지만 모두 각자의 내밀한 개인사에 휩쓸려 있고, 더구나 이날은 몇 십 년 이래 가장 더운 날이다!

11대 1의 혐의 인정에서 그 1의 노력으로, 10명에서 9명으로 다시 8로 그러다가 결국 0명으로 돌아서기 까지의 90여 분.


사족) 중간에 '몬하는' 이라는 번역이 나온다. '못하는'의 오타겠거니 했는데 알고보니 그 부분의 대사는 'he don't'였다. 배심원 중 유식한 척 하기 좋아하는 한 사람이 "(다른 배심원을 가리켜) 저 사람은 그런 것도 '못하는' 사람이오!" 라고 말하는 부분인데, 그만 더 큰 무식을 드러내며 'he don't'로 말한 것이었다.

음, 우리나라 네티즌 번역가의 힘!



2.
시드니 루멧 감독의 영화 '12인의 성난 사람들(12 angry men)'을 보면, 주연인 헨리 폰다가 사형 언도의 위기에 처해있는 한 흑인 소년을 변호하며 '합리적 의심(reasonable doubt)'이라는 말을 쓴다.

영화에서 소년은 사면초가이다. 인종차별이 아직도 엄연한 50년대의 미국 사회에서 빈민가의 한 흑인 소년이 자기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평결을 기다리는 중이다. 살해의 이유가 충분히 짐작되고, 그는 범행 시각에 자기가 영화관에서 보고 있었다는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지도 못한다. 게다가 맞은편 집의 여인은 그가 아버지를 찌르는 현장을 목격했다고 한다.

대부분 백인 남자인 배심원 12명은 모두 그에게 적대적이다. 다들 어서 지겨운 이 검둥이 녀석의 평결을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 게다가 날은 수십년 이래 최고로 더운 날이다. 에어컨도 없는 이 좁은 곳에서 입씨름 하는 건 시간낭비고 그냥 빨리 'Guilty' 해버리고 집에 가고 싶다.

이렇듯 그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의심이 손쉽게 기정 사실로 받아 들여짐에도 불구하고 그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의심, 즉 범행에 대한 확고한 증거(물론 결과적으로 이것은 확고하지 않다)들이 있지만 또한 마찬가지로 그가 범행을 하지 않았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들도 있다면 그로부터 다시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합리적 의심이다.

합리적 의심이란 바로 이렇게 누구나 간과하고 말기 쉽지만, 실제로는 사건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면 당연히 먼저 짚고 넘어갔어야 하는 의심의 단초들을 뜻한다.

범행 추정 시각에 보고 있었다는 영화의 내용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그의 알리바이 성립에 결정적인 흠이 되는 것과 정반대로, 맞은편 창문에서 소년의 범행 현장을 목격했다는 여인이 실상 안경 없이는 그 현장을 정확히 식별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간파해내는 것은 바로 이런 합리적 의심의 뒷받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합리적 의심이 가치를 지니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확고한 벽이 세워져 있어 그에 대한 반대측의 의견이 수렴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 벽에 합리가 파고 들어갈 만한 틈이 있다면, 다시 말해 그 벽이 불합리한 요소들로 구축된 부분이 있다면 그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마땅하다.

황우석이라는 거대한 벽이 있다. 많은 이들에 의해 칭송을 받고 국가적인 지원을 받으며,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거인이다. 더구나 그의 실험 결과는 싸이언스라는 굴지의 과학 잡지로부터 인정을 받은 상태이며 동료 과학자들로부터도 선망의 대상이다. 의심의 여지는 없다. 어느날 밤 흑인 소년이 자기 아버지를 죽인 것처럼.

그러나 잘 살펴보니 뭔가 의심가는 부분이 있고, 그 의심은 합리적이다. 줄기세포에 관한 논문인데 정작 줄기세포를 본 사람이 없고, 논문에 실린 사진은 조작의 흔적이 역력하다.

PD수첩은 '늘상 해 오던대로' 그 불합리의 틈을 파고 들었고 결과는 전 국민의 돌을 맞는 작금의 상황이다.

헨리 폰다는 '합리적 의심'을 유일한 무기로 11명의 'guilty'들에 맞서 싸워 결국 자신의 'not guilty'를 관철시켰으나 PD수첩은 지금 전 국민을 상대로 외로운 투쟁을 벌이고 있다.

그들의 합리적 의심이 '불합리'로 밝혀지든 '합리'로 밝혀지든 나에게는 중요치 않다. 내게는 그들의 의심이 '합리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이 중요할 뿐이다. 그들은 정당한 문제제기를 했고 그 문제제기를 발판 삼아 여러 새로운 사실들이 나오고 있다. 누군가 총대를 매는 일, 합리적인 의심을 유일한 무기로 골리앗의 목에 방울을 거는 첫 발걸음은 그래서 중요한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내가 얻은 것이 있다면 PD수첩에 대한 나의 뿌리 깊은 신뢰가 한 겹 더 두꺼워 지리라는 것뿐이다. 나는 프로그램 폐지로 가닥 잡힌 PD수첩이 빠른 시일 내에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주기를 기대한다.





-흐르는 노래는 Flying Pickets의 'Far away from home', 영화와는 무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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