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 이문세 -옛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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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의 측면에서도 물론 그렇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창작력의 관점으로 보아도, 한번 정점에서 내려가기 시작한 뮤지션은 다시 그 높이에 다다르기가 쉽지 않다. 이 길은 비가역적인 내리막길이며 다만 그 경사를 얼마나 완만하게 만들 수 있는가가 문제가 될 뿐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뮤지션에서 예외없이 적용되는 것이니 내가 심보가 못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사람의 근육이 그렇듯 감수성 역시 우리가 그저 '원숙함', '노련미' 또는 '농익은 경지'라고 쉽게 부르고 마는 그것들과 서로 자리를 맞바꾸며 서서히 사라지는 것인데 이게 말이 그렇지 사실은 참 슬픈 것이다.

운동으로 예를 들자면 노장의 '원숙함'은 젊은 '패기'에 항상 밀리게 되어 있는 것이며 가끔 노련미가 빚어내는 극적인 드라마는 그야말로 가끔 일어나는 일일 뿐이다. 세상을 빛낸 명반들 리스트를 한번 쭉 보라. 대부분이 해당 뮤지션이 젊었을 때 발표한 것들이다. 원숙미가 감수성이라는 말과 등가의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음악판 안떠나고 오래 붙어 있는 사람이 최고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 않은가. 

이문세 (그리고 이영훈)도 그래 보였다. 5집에서 정점을 찍은 이 희대의 콤비는 6집을 통해 바로 지난 앨범이 정점이었음을 안타깝게 증명했고 이 7집에서는 그것을 거듭 확인했다.

갑자기 늙어버린 이 콤비의 앞날에는 이제 내리막길만 남아 보였다. 그리고 사실 그랬다.

하지만 그 길은 가없는 내리막이 아니었다. 이들은 3집, 4집 그리고 5집에서는 결코 할 수 없었던 음악을 바로 이 7집에서 선보였으니 이제 그 곡은 이들 내리막길의 마지막 제동장치나 다름 없었다. 그러고 보면 5집 '광화문 연가'나 6집 '해바라기'에서 들리는 지나친 비장미와 늙수그레함은 이 곡의 '중용스러움'을 위한 습작이었던 것일까.

원숙함이라는 것... 젊음의 패기와 재기발랄함에는 결코 당할 수 없지만 그 역시 그런 시절을 보낸 법이다. 게다가 과거의 영화만 가지고 '원숙함'이라는 선물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 시절을 온전히 관통하고 그후에도 계속 감성을 벼린 자에게만 겨우 허락되는 경지인 것이다.   

그 까마득한 세계가 여기 펼쳐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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