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김현철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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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앨범을 4집부터는 사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매체에서 흐르는 몇몇 곡만을 듣고 '그의 시대가 끝났다', '그의 최고작은 바로 이 1집이다'라고 얘기하는 것은 다소 위험한 일일 수 있다. 잠깐 머리를 굴려보자.

그럼 난 왜 4집 이후 앨범은 안 샀나...

가수와 제작사가 매체에 홍보를 하는 곡은 듣는 이들에게 가장 잘 먹혀들 것 같은 곡들이기 마련이다. 이때 김현철 정도 되는 인물이 자기의 정수라고 할만한 곡들은 눈물을 머금고 포기한 채 소속사가 시키는대로 대중성에만 집중하여 엉뚱한 곡을 홍보하게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여기서 '김현철 정도의 인물'이라는 표현은 그의 뛰어난 음악적 역량에 대한 인정의 의미도 있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의미로서 이전 앨범의 성공으로 가능하게 되었을 것이 거의 분명한, 제작사의 이런저런 입김으로부터의 자유로움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간단히 말해 방송에 나온 곡만 보면 거의 틀리지 않게 그 앨범의 전체 싸이즈를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그의 4집 이후는 암울했다. 아니 또 모르겠다. 내가 이런 평가를 내리는 것이 그를 데뷔 때부터 알고 있기 때문이라면 3, 4집부터 들은 사람은 여기서도 나름의 맛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물론 이런 사람들도 그의 1집을 듣는다면 생각을 바꿀 거라 확신한다.

가능성의 문제를 하나 더 보자. 중후기작들의 방송 홍보곡을 정함에 있어 김현철이 제작사의 압력에 백기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가능성은 물론 낮지만...) 그러니까 나머지 곡들은 다 훌륭한데 유독 후지지만 대중에게 먹힐 곡을 선택한 경우가 되겠다. 허나 이렇다 해도 이 앨범들에 대한 평가는 '최소한 1집 이하'일 수 밖에 없다. 대중에게 알려진 4집의 '왜그래' 같은 곡은 1집에서라면 감히 이름조차 올리지 못할 낮은 완성도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감히 단언컨대 나머지 곡들이 1집을 뛰어넘을 확률은 0이다. 1집이 뛰어나기도 하고 4집 이후의 대표곡들이 너무 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결국 난 앨범을 다 들어보지 않아도 '3집부터 시작된 불안감이 4집 이후부터는 확실해졌다'라고 무리없이 말할 수 있다. 아, 진정 슬프도다...

20대 초반, 청년이라 부르기에도 앳됐을 한 젊은이의 부글부글 끓는 가능성과 터지기 직전의 열정, 동아기획의 뛰어난 조력자들...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가히 최고의 데뷔앨범이라 할만한 작품이 탄생했다. 그 앨범에서도 가장 뛰어난 곡이라 여겨지는 것이 바로 이 '동네'이다. 라디오에서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그 짜릿함이라니!!! '내가 걷는 거리 거리 거리마다'! 응? 한 단어를 연속 세 번 써도 되는거야? 미숙한 보컬마저 장점으로 만들어버리는 비할 바 없이 상큼한 편곡. 음악을 많이 듣고 난 후부터 비로소 제대로 들리던 간주의 기타 플레이. 아, 더 말해서 무엇하랴. '동네'는 김현철의 모든 것이 담긴 용광로였던 것이다.

-제대로 실망하고 싶으면 그의 베스트 앨범에 재편곡/녹음되어 브라스가 빵빵하게 들어간 호화판 '동네'를 들어보기 바란다. 김현철은 뭔가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다.

-이런 식의 분석은 전혀 무의미하기도 하다. 왜냐하면 뮤지션은 구매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만 음악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김현철이 내게 와서 '븅신, 자기 하고 싶은 거지 왜 그걸 가지고 이렇게 말이 많아? 난 이제 화려하고 풍성하고 가벼운 게 좋아' 그러면 난 아무 할 말도 없는 거다. 뮤지션의 자유를 듣는 이가 억압할 수는 없다. 듣는 이는 다만 그를 떠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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