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신촌블루스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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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시절이었다. 이정선, 엄인호, 한영애가 한 둥지에 있었고, 여기서 고개를 돌리면 들국화가, 김현식이, 이병우 조동익의 어떤날이 그리고 유재하와 김현철이 있던 시절.  

뮤지션들이 그에 합당한 대중적 인기를 함께 누렸다는 점에서 80년대가 아닌 90년대를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난 일면 동의하면서도 이 80년대 중후반, 비록 대중적 인기는 확보하지 못했을지라도 외려 90년대의 뮤지션들에게 새로운 음악적 감성과 이땅에서 대중음악을 한다는 것의 가슴 벅찬 가능성을 보여준 80년대에게 진정한 왕관을 물려주고 싶은 것이다.

기실 90년대의 뮤지션들이 그에 합당한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데에는 음악 외적인 측면에서의 노련함과 세련된 전략이 큰 몫을 했다는 것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고, 이것은 음악에도 그대로 반영된 바 장르의 다양화와 녹음 기술의 발전 같은 측면을 제외하면 80년대의 성과를 능가하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이쯤에서 오해를 피하자. 내가 80년대를 으뜸에 두는 것은 그들이 90년대의 반석이 되어서가 결코 아니다. 그럼 무언가. 그 음악이 '지금도' 좋기 때문이다. 다른 게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외국의 팝 음악을 동경했으면서도 결코 그것의 모방이라는 끈적끈적한 함정에 빠지지 않았던 시절, 음표와 가사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당연시됐던 시절, 인기는 얻지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같은 가수들로부터는 존경을 받을 수 있던 시절.

하지만 이들은 결국 사라져갔다. 이들이 (그) 음악을 버리기도 했고, 대중이 이들을 버리기도 했다. 80년대는 그렇게 졌고 뒤의 후배들은 이제 깨달은 바가 있다.

"음악은 좋았는데 그렇게 하면 돈은 못 버는구나."

90년대는 이런 깨달음 속에서 비로소 뮤지션쉽과 대중의 인기가 하나로 겹쳐지는 행복한 시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난 예술은 순수해야 한다느니 중국집 짜장면과는 다른 것이라느니 하는 고상한 헛소리들을 경멸하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가끔은 그 시절을 가득 채웠고 또 채운 후에는 아래로 넘쳐 지금도 땅 밑 깊숙한 곳에서 마르지 않고 흐르는, 하지만 결국은 배고팠던 그들을 그리고 그 시절을 무책임하게 그리워하는 것이다.  


-90년대를 대중음악의 황금기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 한국 대중음악의 황금기, 1990년대'(한울 출판사 刊)라는 책을 집필한 일군의 음악 애호가(평론가)들을 이른다. 핵심적인 주장에 있어서는 나와 생각이 다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의 가치가 깎이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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